문재인의 5·18 눈물로 뒤집힌 광주사태

고정간첩 가족들도 5.18 국가유공자라고?

    체포된 후 전향하기 전까지 남북한을 수십번 왕래한 고정간첩이었던 김용규 선생은 그의 실화소설 『소리 없는 전쟁』에서 고정간첩들이 남한에서도 부인을 얻고 결혼한 사실을 217쪽에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제4대상 1차공작 성공, 대타자 급파 요망"
    그로부터 1시간 후 A3 방송으로 22일 정각 23시, 하향 지시를 받으라는 회신이 날아왔다.
    통금시간이 해제된 후 하산할 때 형권은 비트에 보관 했던 공작금 가방을 들고 내려와 송 마담 이름으로 통장 을 개설하고 은행에 예치시켰다.
    그러고는 송 마담과 의논하여 그녀 명의로 레스토랑을 차리기로 했다. 마담은 아직 법적인 부부도 아닌 자기를 믿고 분에 넘칠 정도로 마음을 써 주는 그를 고맙게 생각하고 개업준비를 서둘렀다.
    가게에서 먹고 자고 일하며 개업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던 9월 22일 밤 11시, 지시가 내려왔다.
    "10월 2일 오후 2시에 원남동 로터리와 종묘 사이의 노상에서 A집 암호로 접선하라” (김용규 1999, 217).
김용규의 실화소설 소리없는 전쟁 216~217쪽

    그런데 1970~80년대에 고정간첩들이 신분 위장을 목적으로 남한에서 남한 여성들과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며 가정을 꾸렸던 사실이 최근에 자신의 실명을 밝히는 한 탈북 지성인 증언으로 확인되었다. 북한애서는 신분이 좋은 가정이었기에 북한에서 영웅 대우 받는 북한의 여러 고정간첩 가정들을 잘 알고 있고, 북한의 5.18 유공자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녔던 그는 광주사태를 추동한 고정간첩들은 북한에도 남한에도 부인과 자녀들 둔 사실을 증언한다 (아래 뉴스타운 영상 21:25). 그가 놀란 것은 광주사태를 추동한 고정간첩들의 부인들과 자녀들은 북한에서 5.18 유공자 가족으로 특별 대우를 받는데, 그들의 남한 부인들과 자녀들도 5.18 유공자 대우를 받고 있다는 어이 없는 사실이다.


    『역사로서의 5·18』과 『임을 위한 행진곡』 등 김대령의 여러 저서들에서도 그 단서가 수록되어 있듯이 윤한봉과 윤상원 등 광주운동권, 즉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계열의 광주사태 주동자들이 무장반란을 사전 준비하기 위해 고정간첩들과 접선하고 있었음이 관찰된다. 그런데 위의 탈북자 역시 광주운동권의 광주사태 주동 배후에 고정간첩들이라는 북한세력이 있었던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다. 자신이 13세였던 1980년부터 광주사태를 관찰해 온 이 탈북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북한세력이 광주사태를 추동한 목적은 남한을 멸망시키려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남한에서는 그 북한세력 및 그들의 남한 부인들과 자녀들이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고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넌센스다. 이런 미친 넌센스가 역사 논리와 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을 빨리 바로 잡지 않으면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는가?

청진에 소재하는 북한의 5.18 묘지

    청진에는 북한의 5.18 묘지가 있다. 이 묘지는 1980년 광주 일원에서 무장반란을 선동하는 작전을 수행한 후 북한으로 복귀하지 못한 인민군들과 고청간첩들의 가묘이다. 보훈처가 5.18 유공자 명단과 신원을 공개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고청간첩들은 남한에도 부인과 자녀들이 있었는데, 그러면 광주에서 시민군을 지휘한 고정간첩들의 북한에 있는 가족과 남한에 있는 가족 모두가 북한과 남한의 국가유공자들이라는 말인가?

5.18 묘지에 헌화하는 북한대표단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대표단 60 여명이 장대비를 마다하지 않고 멀리 5.18 묘지에 찾아와 먼저 헌화하고 참배한 후 남한에서의 일정을 시작하였다.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공산혁명을 지원하는 국가 대표단이 왜 그렇게 하였는가? 그 이유는 5.18 묘지에는 북한군과 북한에서 파견한 고정간첩들도 안치되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은 북한의 국가유공자들이다. 그래서 현충원에서는 참배할 수 없는 그들이 5.18 묘지에서는 참배하였다. 비록 청진에 5.18 가묘가 있기는 하여도 실제로 공화국 영웅들이 (단 몇 명이라도) 안치되어 있는 묘역을 참배하는 것이 북한대표단에게는 국가적으로 중대사였던 것이다.

베트남 공산주의 혁명가 호찌민 묘소에 헌화하는 문재인

    지난 3월 23일 문재인이 베트남 공산주의 혁명가 호찌민 묘소에 헌화하였다. 호찌민은 베트남 대학살로 민주화운동의 씨를 말려 버렸는데 왜 문재인이 참배하며 헌화하였는가? 그것은 1970년대부터 이미 베트남 공산당 세력과 문재인은 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 두 장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5.18 묘지에 헌화하는 북한세력은 5.18 세력과 같은 편인지 다른 편인지 답이 나온다.

(2018년 3월 3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