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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일본군이 아니었음을 입증한 김대중
 

   동만주에 거주하던 고구려의 유민, 즉 발해의 유민 후예들이 건국의 한 주체요, 한 기둥이었기에 일제 치하의 조선인들에게는 제2의 조국과도 같았던 만주국에서 군관이었던 박정희를 일본군이라고 부르면 듣는 사람들이 박정희가 일본군복을 입고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박정희는 단 한번도 일본군복을 입고 있었던 적이 없었음에도 일부 몰지각한 이들과 좌빨들은 사람들에게 그런 착각을 일으키게 하려는 나쁜 심보들이 있다. 

   만주국은 엄연한 독립국이었다.  그럼에도 무지한 사람들은 정서상 만주국에서 근무하면 친일파였다는 주장을 한다.  그런데, 당대 사람들에게는 행정상뿐만 아니라 정서상으로도 만주국이 일본과 혼동될 수 없음이 너무도 분명하였다.  만약 만주국이 일본 통치권 안에 있었으면 광복군 대장의 조카 김일련은 일본 신원조회에 걸렸을 것이다.  행정적으로 엄연히 제3국이었기에 김일련은 태연히 만주국 관리로 복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서상으로도 생각해 보라. 삼촌은 광복군 장군 김학규인데 김희선 아버지 김일련이 만주국에서 경찰로 복무할 수 있었을까.  오늘날의 무지한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그런 일은 정서상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발해의 유민 후예들이 거주하던 간도는 우리땅임을 알던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조선인이 만주국 건국에 동참하면 친일파라는 정서가 전혀 없었다.

   자기 부친 김일련이 만주 독립군이었다는 김희선 의원의 주장은 무지에서 비롯된 거짓말이었다.  많은 좌빨들이 이 거짓말에 속았으며, 이 거짓말을 확대 재생산하여 국민을 기만하였다.  그러나 만주국 경찰은 일본 경찰이라는 좌빨들의 주장 또한 성립될 수 없는 거짓말이다.  만주 경찰이 결코 일본 경찰일 수 없었듯이 그 만주국군도 일본군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무지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큰 오늘날의 시대에 많은 한국 국민이 마치 박정희가 일본군복을 입은 일본군이었던 것처럼 속고 있다.  사실 김대중이 그 상징적 존재인 좌빨들의 친일인명사전은 박정희를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동시대에 일본군복을 입었던 김대중의 사진이 박정희는 일본군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위 동영상에서 윤리강사 이현이 열을 올리며 학생들에게 거짓말하고 있다.  정말로 전교조와 노사모 부류의 미개인들의 거짓말 창작 능력은 대단하다.  어떤 미개인은 박정희가 일본천황에게 혈서를 보냈다고 사기치고, 위의 동영상에서는 한 미개인이 박정희가 "일본사관학교에 들어가서 일본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혈서를 쓰고" 등의 거짓말을 지어낸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혈서를 썼다고 주장하는 반면, 윤리강사 이현은 박정희가 일본사관학교에 들어간 후 혈서를 썼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미개인들과 좌빨들이 이런 거짓말들을 창작해낼 수 있었던 시절도 한 철이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5일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사본을 공개한 후로는 좌빨들이 이제 더 이상 이런 픽션소설쓰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여태껏 좌빨들은 박정희가 일본천황에게 혈서 보냈다는 거짓말과 박정희가 1939년에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거짓말을 동시에 해왔었다,  박정희가 일본 천황에게 혏서를 보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지난 5일의 만주신문 기사 공개로 확증되었지만, 박정희가 1939년에 독립군을 토벌하였다는 주장은 허위주장이었음이 이미 지난 2005년에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에 의해 확인되었었다 (http://www.chosun.com/national/news/200512/200512190078.html ).  그럼에도 이현같은 픽션소설가들이 여전히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며 인터넷에 동영상으로 그런 허위사실 유포를 하였으나, 금번의 만주신문 기사 공개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의 관심이 객관적인 사실로 쏠리게 되었다.

   위에서 우리는 일본 인명사전에 기록된 박정희의 경력을 본다.  중앙의 19-7이라는 연대 표시 바로 옆에 박정희는 "만주국군 소위"였음이 명기되어있다.  만약 자국군이었디면 일본군(日本軍)이라고 명기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군이었기에 만주국군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일본인들이 박정희는 일본군이 아니었다는데, 도대체 왜 한국의 어떤 무지한 이들은 박정희가 일본군이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가?

   박정희는 유학생이었으며, 유학생은 일본군 장교가 될 수 없었다.  한국 육사에도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지에서 유학생이 온다.  만약 아프리카 사람들이 한국 육사에 유학했던 아프리카 군인을 한국군이라 부르면 우리가 기절초풍하지 않겠는가?  위에 네째 줄에 보면 "일본육군사관학교 유학"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자, 박정희 준장이 1954년에 미국 육사(정확히 말해 포병학교)에 유학하였다. 그렇다고, 박정희가 미군이었는가?  전두환 역시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육사에 유학하였었다.  그렇다고 전두환이 미군이었는가?  박정희는 일본육사에 입학한 것이 아니라, 포병학교 과정을 일년간 이수하였다. 

   자, 박정희와 전두환이 1950년대에 미국육사 연장교육 프로그램에 유학해 있는 동안 미국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써야 했던가?  아니다.  유학생들은 유학생반에서 따로 수업을 받았다.  1940년대의 일본 육사 유학생반도 마찬가지였다.  유학생들은 일본사관생도 제복도 입지 않았을 뿐더러 수업도 유학생들끼리 따로 받았다.  위의 박정희 학력에 57기생 상당으로 되어있다.  일본의 육사 57생기생들은 유학생들을 동기생으로 여기지 않았다.  단지, 같은 해에 재학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일본육사 유학생들이 혈서를 썼다는 거짓말을 지어낸 윤리강사 이현의 픽션소설 쓰는 실력은 실로 대단하다.  그러나, 팩트(facts)와 너무도 동떨어진 거짓말을 하는 자가 역사와 윤리를 강의하면 교육이 망가지지 아니하겠는가?

위의 동영상에서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께서 작사, 작곡하신 노래 "나의 조국"을 듣는다.  과연 그 어느 시인이 조국 사랑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나의 조국 / 박정희 작사·작곡

백두산의 푸른정기 이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의 높은기상 이겨레 지켜왔네
무궁화꽃 피고져도 유구한 우리역사
굳세게도 살아왔네 슬기로운 우리겨레

영롱한 아침해가 동해에 떠오르면
우람할 손 금수강산 여기는 나의 조국
조상들의 피땀어린 빛나는 문화유산
우리모두 정성다해 길이길이 보전하세

삼국통일 이룩한 화랑의 옛정신을
오늘에 이어받아 새마을 정신으로
영광된 새 조국에 새역사 창조하여
영원토록 후손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세

   자, 도대체 좌빨들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하였기에 우리의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하였다는 말인가?  민족문화연구소가 지난 5일 혈서 기사라며 공개한 만주신문 기사에는 혈서 사진도 혈서 목격자도 없고, 당초의 민문연측 주장과 달리 그 글자도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 滅私奉公)이 아니라, "일사에 어봉공"(一死以テ御奉公)으로 밝혀졌다. 만약 그 시대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학교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을 밝히면 친일이었는가?  아니었다.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말을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말로 해석하면 그 해석은 틀린 해석이다.  "일사에 어봉공"은 입학시켜 주면 좋은 생도가 되겠다는 결심을 밝힌 말이다.  이 말귀에 전혀 친일논란의 소지가 없다.  무엇이 한 인물의 친일을 입증하는 기사인가?  바로 아래의 여운형씨의 기사이다.

   기사 제목이 "황민반도"이다.  여운형씨가 조선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글을 쓰고 조직을 키웠던 것이다.  바로 여운형같은 인물이 일제의 조선인 황국신민화 정책에 앞장섰던 친일 부역자였던 것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여운형의 친일 행적들은 그 물증이 분명하다. 

▲ 여기 여운형의 학병 권유 격문이 실린 『반도학도출진보(半島學徒出陣譜)』사진이 있다.


▲ 그리고 여기 '반도이천오백만동포에게 호소함'이라는 격문 제목과 '여운형씨 수기'라는 필자의 이름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좌빨들이 여운형 등 진짜 친일파들의 이름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 만주국군 소위 시절의 박정희의 사진이 있다.  보라!  박정희의 군복은 일본군복이 아니었다.  그는 결코 일본의 황군이 아니었기에 일본군복을 입지 않았다.  조선인 일개 학도병도 일본군복을 입었으나, 만주국군 군관 박정희는 일본군복을 입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만주국군은 일본의 황군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국민들이 군복에 대한 상식이 없기 때문에 좌빨들의 선동에 놀아났었다.  그러나, 아래의 김대중의 목포상고 졸업 앨범이 박정희의 누명을 벗겨준다. 고등학생이 사회 유지로 여겨지던 시대에 목포상고 회장은 그 지역의 지도자였다.  그런데, 여운형이 조선인 황군 지원 권유 격문을 쓰던 바로 그때에 김대중이 몸소 일본군복을 입고 연극 공연을 하며 졸업 사진을 찍었다.  해방이 되자마자 여운형씨의 공산당 조직은 건준으로 변신하는데, 이때 김대중이 목포지부 간부가 되었다. 즉, 김대중은 일제시대에 여운형이 조선인 황군 지원 권유 격문을 쓰던 때부터 여운형의 추종자였으며, 일본군복을 입고 조선인 학생들을 선동했던 그 행동 대장이었던 것이다.

   자, 여기서 박정희의 군복은 전혀 일본군복이 아니었고, 김대중의 제복이 일본 황군 복장이었음을 아래 일본군 사진 자료들로 확인해 보자.

   여기 윗사진 왼편의 일본군 장교가 긴 칼을 차고 있는 자세를 보라.  바로 김대중의 앨범 사진에서 차고 있는 칼이 일본검이었던 것이다. 

   학도병이라도 일본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 황제로부터 봉급을 받는 군인은 누구든 반드시 저 복장 차림이어야 했다.  박정희는 단 한번도 저런 군복들을 입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무지한 이들과 좌빨들이 박정희를 일본군이라고 부를 때 사람들에게 마치 박정희가 저런 일본군복을 입고 있었던 것으로 오해하게 된다.  도대체 그런 거짓 지식을 전파하는 비뚤어지고 못된 심보가 왜 필요한가?  이순신 장군에게 왜장 옷을 입혀놓고 이순신 장군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 시대 사람들에게 만주국군은 일본군이 아니었음이 복장상으로도 너무도 분명하였다. 

   과연 여운형과 김대중에게 그들의 친일 부역은 강요에 의한 것이었지 결코 진심이 아니었다는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있을까?  김대중이 1989년에도 여자전히 히로히토 일왕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1998년 대통령에 취임한 후 제일 먼저 서두른 일이 히로히토의 아들을 천황으로 부르자는 것이었다. 오늘날 서양국가들이 영국 등 유럽의 왕들은 king이나 queen으로 부르고 일왕만 emperor로 불러주는가?  왜 우리나라만 일왕을 천황이라 불러야 하는가?  그것은 김대중이 일본군복차림의 자신의 모습을 뽐내며 활개치던 목포상고 시절에 그의 몸에 배어있던 황민근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그 시절의 일본군복 사진이 박정희가 일본군이었다는 누명을 지금 벗겨주고 있는 것이다. 

(2009년 11월 21일 작성)   
  

들통난 민족문제연구소의 혈서 기사 조작

☞ 북한 지령으로 제작된 광주사태 선동 대자보

조작으로 판명된 盡忠報國 滅私奉公 혈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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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포인트

* 만주국군복과 일본군복은 어떻게 달랐는가?
* 김대중은 목포상고 학생회장 시절 왜 일본군복을 입고 긴 칼을 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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