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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5·18 변호인단의 의견

'약자는 악, 강자는 선' 논리만이 통하나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찬·반양론을 활발히 전개하는 습관에 익숙하지 않아왔다. 찬·반 양론보다는 선악의 구분을 더 즐겨왔다. 이런 습관을 그대로 지닌 채 우리는 3권분립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정치제도를 반세기 가까이 운용해 오고 있다. 그러나 3권은 엄연히 분립되지 못했고 행정부의 장인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 대통령이 정하는 악인은 철저히 매도·매장되고 말았다. 오랜 왕조시대에서 권위주의시대였다는 군인출신의 역대 대통령은 물론, 문민을 자처하는 현재도 그 관례에는 변함이 없다. 약자의 논리는 으례껏 악이기 쉽고 강자의 논리만이 선인 것으로 통용돼 왔다.

이에 「한국논단」은 강자에서 약자로 전락한 측의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일반 신문이나 TV가 지나치게 '강자의 논리'만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에 대해 衡平을 기한다는 뜻에서 '12· 12, 5· 18재편을 통해 악의 논리'로 통념화된 변호인측의 의견중 모두진술 전반부분을 옮겨 싣는다. [편집자주)


민형사소송 특히 형사소송에 있어서 법관과 검사 그리고 변호인은 정립하는 세 발로. 실체적 진실의 발견에 상호 협조하는 메카니즘에 있다고 합니다.

변호인은 그 고유의 권한과 포괄적 대리권을 행사하여 피고인의 이익을 추구 · 옹호함을 그 소임으로 하나 그를 통하여 재판부의 실체적 진실 발견에 기여하는 것이며 변호인 일동은 특히 이 사건에 있어서 사안의 민족사적 의의를 감안하여 진실규명으로 민족의 갈등을 풀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에 불타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특히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 사건에 있어서 피고인 등이 진술 · 주장하는 것은 그 이익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진실규명을 통한 법 나아가 정의의 구현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 유념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주화 이름 아래 사실호도

진실의 규명 없이 이를 외면한 채 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아래 사실을 호도하여 온 것이 민족의 갈등을 10년간 계속하여 온 근원적 잘못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사건의 쟁점 사항에 관하여 간략하게 언급하겠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헌법은 그 소정 적법 절차에 따라 전후 아홉 차례에 걸친 개정이 있었습니다. 그 개정 때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 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취지를 명백히 하여 나라의 연속성과 정통성 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공소장 기재에 의하더라도 1980년10월 27일 국민투표에 의하여 헌법개정 즉 제5공화국 헌법이 개정되었고, 이에 이 헌법에 기하여 현행 대한민국헌법이 개정되었습니다.

만약 이 대한민국 헌법 제8차 개정 즉 제5공화국헌법이 부정된다면, 나아가 현행 대한민국 헌법도 그 실재, 효력이 부정되고 대한민국의 연속성: 정통성마저도 부정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은 법리상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국제사회가 인정한 연속성 ·정통성

부연해서 반문하겠습니다 국가가 국제적, 외교적으로 승인되는 것은 외교관의 교환, 주재 등 외교관계를 수립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의 제8차 개정이 이루어지고 세칭 제5공화국이 발족한 이후 우리나라에 주재하고 있는 외교관을 철수하여 외교관계를 단절한 나라가 있습니까?

국제연합을 위시하여 여러 국제기구에서 우리나라의 지위에 어떤 변동이 있었습니까?

우리나라와 체결되었던 각종 국제조약이 파기된 사례가 있었습니까?

모조리 없었습니다.

제5공화국은 국제사회에서 그 연속성과 정통성이 만천하에 승인된 것입니다. 내정면에서 볼 때 각종 시책이 단절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위 제5공화국 헌법에 터잡아 제9차 헌법개정이 이루어지고, 그 제6공화국헌법에 의하여 벌써 두 사람의 대통령이 선출되고, 두 차례의 총선거에 의하여 국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사법부에 관하여서도 논급하겠습다. 여기 열석하신 재판관, 검사를 검사를 거론하는 것이 죄스러워 변호인의 경우를 말하겠습니다.

본 변호인은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때 판사로 임명되어 4 19, 5 16 등 변혁기를 거치면서도 대한민국의 연속성, 정통성으로 인하여 자유당 정권,과도 정권, 민주당 정권, 공화당 유신정권, 제5공화국, 제6공화국으로 이어지면서 연임 ·재임명 절차를 거쳐 법관으로 임기를 마치고 지금 이 변호인단의 말석에 서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본 변호인의 자격에 이의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물며 본 변호인을 내란죄의 폭도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적법한 자격이 있는 자로 적법한 절차에 의하여 법관에 임명되어 보람된 재판업무에 종사하다가 자랑스럽게 정년퇴임한 노법관이라고 인정하여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제5공화국의 정통성에 연유한 것입니다. 이 대한민국 헌법 제8차 개정을 부정하고 제5공화국을 부인한다면 그 법리의 궁색함과 폭력성은 이를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외교적, 국제적 지위는 물거품이 되고 모든 국가기관과 공직자의 지위는 부정되는 중대한 국면에 이를 것입니다.
 

역천자가 순천자 제압한 헌재결정

지난 번 검찰수사결과 발표의 그 표현의 적절여부는 논외로 하고, 성공한 쿠데타 운운은 바로 이와 같은 점에 연유하는 것입니다.

나라의 연속성과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권력의 영구적 장악, 장기 집권은 불가피하게 되고, 이 기도를 깨뜨려 새로운 헌정질서를 수립하려 한다면 집권자가 그 권력을 스스로 이양하지 않는 한 새로운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제5공화국의 정통성은 법리상으로나 사실상으로나 그 어느 누구도 이를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 변호인 단이 그동안 벌여 온 위헌 제청신청 기타 헌법소원 등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爭訟에는 사실상 법원이 판단하여야 할 재판사항도 있고, 또 헌법재판소도 그 많은 부분을 재판사항이라고 법원에 미루어 놓은 상황이므로 부득이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사료합니다.

(1) 본 변호인에게는 두 아이가 있습니다. 본 변호인을 비롯하여 나이 어린자녀를 가진 부모가 그 자녀에게 헌법재판소 결정을 두고 무엇이라고 가르칠 수 있느냐-적지 않은 갈등이 있어 말씀드립니다.

우리들은 어려서 어른들로부터 다수결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를 배웠고 또 순천는 살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배워 왔습니다.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 관한 위헌여부심판제청신청사건 결정 문에서 헌법재판소는 비유하자면 역리가 순리를 누르고, 역천자가 순천자를 제압하는 것과 같은 결정을 선고하였습니다

물론 헌법재판소법의 정함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소위 9분의 4의 정의라고 할 것이 아니라 9분의 4의 비리인 까닭에 헌법재판소법의 정함에 따라 9분의 5의 순리, 위헌의 선고를 할 수 없다는 주문을 선고하였어야 할 것입니다.

종전의 주문례를 깨고 유독 이 사건에 이르러 합헌이라는 선고를 한 것은 9분의 4의 비리를 선고한 것으로, 무슨 머리를 내걸어 그 무슨 고기를 판 것이라는 비유를 생각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 자녀에게 무엇이라고 알아듣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이며, 본 변호인은 이 사례가 자녀교육에 골몰하는 우리들 부모들로 하여금 가치관의 혼동 등 고민을 갖게 하지 아니하고, 우리나라 장래를 짊어질 우리들 자녀들 가슴에 응어리로 남지 않기를 간곡히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기성세대가 후세에 무엇을 남길 것입니까?
 

유죄라는 부동의 전제로 온갖 억지

(2)공소시효제도는 한 마디로 피고인 등 행위자의 이익을 위하여 마련된 제도입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행위자의 악성이 교정되고. 사회의 응보감정도 사라졌습니다. 이 상황을 존중하여 공소권을 소멸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제도의 첫번째 존재 이유입니다.

형사소송제도에 있어서는 특히 피고인 피의자의 이익을 위하여 확대해석이나 유추해석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그 움직일 수 없는 기본 철칙입니다.

따라서 법률에 명문으로 규정하지 않는 공소시효의 기간의 계산이나 그 정지사유 등은 위헌 무효임은 법리의 초보적 상식입니다.

공소권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는 등의 억지는 제도의 본 뜻을 망각하여 피고인 · 피의자 등을 처벌하여야겠다는 집념의 발현에 불과한 것입니다.그 어디에도 그와 같은 명문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심리를 통하여 이 사건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리라고 믿습니다만 이 공소시효의 완성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피해가고자 온갖 궁색한 이론이 운위되고. 그와 같은 노력이 시도되었습니다.

그 논의와 시도는 이 사건 피고인들의 유죄라는 부동의 전제 아래 이를 반드시 처벌하여야겠다는 의지에 비롯된 것입니다. 검찰이 폭동이라고 규정한 듯한 사실, 폭동의 종료시점 등이 바로 이를 웅변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5 · 18특별법을 적응하지 않더라도 이 사건 공소시효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내세우는 폭동행위와 그 종료시점은 이 사건 사실심리를 통하여 그 당부가 가려지고 정당한 공소시효의 기산점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5 18 특별법이 위헌이라고 다수의견을 가로막은 합헌이라는 소수의견도 이 사건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엄연한 사실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3)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이며 국적법 제2조에 해당하는 자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됩니다.

그리고 통치권에 기하여 제정된 법령은 이 영토내에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에게 고루 적용됩니다. 법률은 필연적으로 일반성 ·추상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적용대상자만을 위한 특별법

그 결과 개별적, 구체적 사항을 규율하는 이른바 처분적 법률은 그 규율대상이 특정되고 한시적인 것이므로 개별사건법률의 개인대상법률, 한시적 법률로서 법규범이 갖추어야 할 일반성과 추상성을 결한 것이어서 법률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조건을 갖추지 아니하고 이와 같은 입법은 입법권의 범위를 일탈한 것이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법률이 허용된다면 권력분립의 원칙과 평등의 원칙에 위배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5.18특별법은 전형적인 처분적 법률입니다. 적용대상자가 특정되어 있어 평등의 원칙에 반합니다. 특정인의 특정사안에 대한 공소시효의 정지를 규정하고 있어 개인 대상법률이며, 개별사건법률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특별법은 세칭 12-12와 5 · 18사태를 헌정질서 파괴범죄행위라는 전제 아래 그 공소시효의 정지를 규정함으로써 헌법상의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고, 법원의 재판권을 침해하여 헌법상의 권력분립의 민주주의 기본이념도 짓밟은 것입니다.

(4) 헌법은, 모든 국민은 행위시에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소시효제도는 비록 절차법인 형사소송법에 규정되어 있으나 그 실질은 국가형벌권의 소멸이라는 점에서 형의시효와 마찬가지로 실체법적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이미 밝힌 견해이므로, 이에 관하여도 위헌법규정이 적용된다는 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법률불소급의 원칙 , 소위 사후법금지의 원칙은 어떤 목적을 위하여 사후에 법률을 제정하여 특정인을 처벌하는 것을 예방하려 함에 그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표본이라고 할 미국, 전형적 민주주의의 발현이라고 하는 미합중국 헌법 제1조에 그 규정을 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형법정주의가 아직 정착되어 있지 아니한 시대에 있어서는 입법에 의하여 형벌을 과하는 것은 어쩌면 부득이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분야에 법체제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현대에 있어사는 사후법 제정은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위한 수단일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법은 형사법 전체계에 배치된다

논자는 소급입법의 선례가 있었다고 하여 그 유효함을 역설하기도 하고 진정소급효와 부진정소급효를 분류하여 법률불소급의 원칙의 예외사례를 논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논자가 거론하는 소급입법은 전쟁 당사자 국가의 강화에 기한 전쟁범죄 처단, 동서독 합병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은 합병적 특정범죄의 처단 등 모두가 서로 다른 헌정질서하에서의 특수범죄에 관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재판부에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공소사실 및 재판에 의하여 확정된 사실에 대한 법률적 평가, 법률의 적용은 재판부의 전권에 속하는 사항이며, 공소장에 기재된 공소사유에 대한 법률적용의 적시는 단순한 검찰의 의견진술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검찰은 이 사건에 있어서 5-18특별법은 그 적응없이도 공소유지가 가능하다고 공언하여 공소장에 5·18 특별법은 적시를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헌법이 정하는 여러 원칙에 반하여 피고인 등의 기본인권을 침해 하는 처분적 법률로서 소급입법으로 무효인 5·18 특별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공소시효 및 그 정지 등을 심리하여 주시기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위 법률이 무효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 법률의 해석과 운송은 법관의 전권에 속하는 사항이므로 이 법조문은 형사법의 전체계, 특히 공소시효제도의 본질에 배치되지 않도록 해석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어떤 법률이 법률체계 전체와 배치될 때는 해석론으로 그 법률의 효력을 부인하거나. 그 의미를 축소하여 합리적 적용을 꾀하여 왔습니다. 이 사건 세칭 12·I12, 사태와 5·I8사태의 배경에 관하여 간략하게 언급 하겠습니다 사안이 워낙 복잡다기하고, 관련자들이 많아 피고인들의 진술이 장황하고, 산만하여 사건심리가 방만하여지는 것을 막아 효과적인 심리가 조속하게 이루어지는 소송경제상 사안의 배경을 가급적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충정에서임을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 1979년 10월 26일 19시 40분경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고, 중앙정보부 직원 박선호, 박홍주, 이기주, 유성옥 등과 더불어 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 대통령경호처장 정인형, 부처장 안재송, 대통령경호원 김용섭, 박상범,식당종업원 이정호, 운전기사 김용태,김용남 등을 살해하였습니다.
 

살해사실 알고도 범인지시 따른 총장

이 때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는 김재규의 부름을 받아 별채에 있었는데, 사건직후 맨발에 피묻은 와이셔츠 차림의 김재규와 위 박홍주 등을 정승화의 승용차에 같이 태워 현장을 떠나 육군본부 벙커로 가는 차중에서 김재규로부터 대통령의 살해사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함이 없이 이를 은폐한 채 김재규의 지시에 따라 계엄선포를 위한 국무회의의 개최 등을 준비하였습니다.

같은 날 23시 30분경 대통령비서실장 김계원이 국방장관 노재현에게 김재규가 박대통령을 시해하였다는 사실을 알린 후 우여곡절 끝에 김재규는 보안사령부에 체포되었습니다.

그후 1979년 10월 27일 04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정승화는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고, 동일자로 계엄공고 제5호에 의하여 박대통령 시해사건의 수사를 위하여 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되고, 피고인 전두환이 그 본부장에 임명되었습니다.

합동수사본부의 수사진전과 대통령 시해사건 발생 후의 정승화의 행적에는 위의 육군본부 벙커 도착 때까지의 의문점 외에도 군수뇌부의 소집과 육군 20사단 9공수여단의 육군본부출동, 수도경비사령부의 출동준비명령, 청와대포위지시, 군통수권자인 대통령권한대행 최규하에 대한 사실 은페 등 허다한 혐의점이 있어 이의 수사가 불가피하게 되어 정승화를 합동수사본부에 연행하려다가 야기된 불상사가 이 사건 세칭 12·12사태입니다.

국가원수 시해라는 중대사건을 수사함에 있어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을 조사하는 것은 상황파악과 증거수집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당연한 수사의 초보이며, 하물며 그사람의 행적에 범행가담의 혐의가 있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입니다.

수사대상자가 비록 군대 상급자이었다고는 하나 수사에 협조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순순히 수사에 응하였더라면 이와 같은 불행한 사태는 미연에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건현장에 있던 사람 수사는 당연

만약 정승화를 연행하려 한 행위가 군형법상의 반란행위에 해당한다면 정승화에 대한 유죄판결이 확정한 사실은 과연 무엇이라고 설명하여야 하며 그 확정판결의 효력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이 사건 심리에 쟁점사항으로 부각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이 사건 심리는 위 확정판결이 확정한 사실을 전제로 하여야 하며 심리의 범위도 이 확정사실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검사는 위 정승화의 연행에 대통령의 재가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참모총장의 연행에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이는 단순한 관행에 불과합니다.

군내부의 비난을 받은 바는 있습니다만 방첩부대장이었던 망 김창룡이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을 업고 군내 고위장성 등의 비행 정보와 그에 대한 수사상황을 대통령에 직보한 데서 비롯한 관행이었을 뿐입니다.

이에 따라 정승화에 대한 연행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직보를 받은 최규하 대통령이 정승화의 혐의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양해하면서도 자신의 원칙주의적 업무처리 방식으로 국방부장관을 거쳐오라고 하여 뒤에 이를 재가하였을 뿐 이에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습니다.

병력동원의 문제가 있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20시 40분경 정승화의 연행사실을 알게 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은 전병력을 동원, 실탄을 지급하여 전투태세를 갖춘 다음 30경비단 공격을 기도하여 윤성민 참모차장에게 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9공수여단의 동원을 건의하였고, 동일 22시경 특전사령관 정병주는 그 예하 9공수여단의 출동을 명하기에 이르렀으며 9공수여단 1개대대 병력이 같은 날 24시경 서울로 출동하였습니다.
 

지휘체계 무시한 수경사령관이 반란

이어서 윤성민 차장, 이희성 중앙정보부장 등의 강력저지에도 불구하고,장태완 수경사령관은 30여대의 전차와 장갑차를 앞세운 수도경비사령부 전병력을 공격개시선인 아스토리아 호텔 앞으로 전진 배치하고, 계속 26사단과 수도기계화 사단의 출동을 독촉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병력동원은 지휘체계를 무시한 항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위 장태완은 헌병감 김진기와 대통령공관 습격과 최규하 대통령 납치를 획책하고. 30경비단 및 보안사령부에 대한 공격을 명령하여 군사반란까지 기도하였으나 이와 같은 사실은 장태완 자신이 그의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장태완은 스스로 그 자신의 군사반란 내지 기도를 자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당시 노재현 국방장관의 피신과 육군참모총장의 직무를 대행할 윤성민이 육군지휘부를 수도경비사령부로 이동시킴으로써 군지휘체계에 공백현상이 발생하였고, 대통령의 통수권행사가 불가능한 심각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지휘체계의 공백상태에서 사태를 수습하고, 수도 서을 중심부에서 일어날 포격 등 군사반란을 막기 위하여 1공수여단, 3공수여단, 5공수여단, 2기갑여단이 중앙청, 효창운동장, 고려대학교에 각 출동하여 장태완, 정병주 작전참모부장 하소곤을 체포함으로써 사태가 수습되었습니다.

이 법정에서는 이 병력동원 상황에 관하여서도 심리를 다하여 과연 누가 군사반란을 기도하였는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검찰은 30경비단 회동이 마치 반란 모의를 위한 것이었다는 뜻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로 과도정부체제에서 육군참모총장이며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대통령시해 공범으로 연행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서을 근교 중요부대 지휘관들에게 알려 군의 동요를 막고자 하는 단 한가지 목적만이 30경비단 회동의 취지였습니다.
 

사법부에 계엄선포 판단권한 없다

(2) 1980년 5월 17일의 전국비상계엄 확대조치는 대통령의 국가통치권에 기한 통치행위입니다. 이 비상계엄확대는 당시 유일하게 비계엄지역으로 있던 제주도에 비상계엄을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특정지역에 발생한 비상사태라고 하더라도 그 영향이 국가전역에 미칠 때에는 비상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다른 지역에도 계엄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판단결과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을 경우, 그 선포는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라 할 것이므로 그것이 누구나 일견해서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것으로 명백하게 인정될 수 있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아니한 이상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성격을 갖고 있는 비상계엄선포를 가리켜 당연 무효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할 것이며, 비상계엄선포의 당·부당을 판단할 권한은 사법부에도 없다는 것이 5 ·17 비상계엄확대조치에 대한 대법원판결(1981년 1월 23일 선고 80도 2756 판결)이므로 어느 누구도, 검찰이라 한들 이 비상계엄에 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 권능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1979년 5월 17일 이 비상계엄전국확대조치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국가통치권차원의 계엄업무의 집행절차일 뿐 검찰이 용훼할 일이 아닙니다.

(3) 1980년 5월 17일 대통령이 전국비상계엄확대조치를 취함에 따라 계엄사령부는 전국 136개 주요국가시설 보안목표와 학원소요가 극심하였던 전국31개 대학에 계엄군을 출동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최초로 광주시에 출동한 계엄군은 전남대에 출동한 특전사 7공수여단 33대대, 조선대학에 출동한 특전사 7공수여단 35대대였습니다.

이 이후에 전개된 세칭 5·18사태에 관하여서는 사안의 미묘함과 그 폭발성을 감안하여 이에 제3자적 입장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헤리티지 재단의 아세아연구센타가 작성한 "남한의 광주사건 재조명"이라는 제호의 조사보고문서를 인용기재하고 낭독은 하지 않겠습니다.(18쪽에 실려 있음)
 

대통령 통치행위, 정권장악 수단인가

(4) 다만 검찰의 신군부세력의 정권장악 운운에 관하여는 이견이 있습니다. 검찰은 국가경영이라는 막중대사를 어린애 소꼽장난쯤으로 파악하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의 통수권차원의 통치행위를 정권장악의 수단으로 보지는 않았을입니다. 그렇다면 최규하 대통령과 계엄업에 종사한 사람도 모두 내란범죄자에 해당하고, 계엄자체가 내란죄의 폭동이 되어야 합니다. 이 부분 공소제기의 취지가 모호하여 뒤의 석명요구에도 언급하겠습니다.

다만, 피고인들의 소위가 어떤 죄를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법률적 파악과 평가가 가능하였으리라고 사료되고, 검찰 공소는 논리의 비약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도가 지나치다는 비의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검찰의 수사 및 공소의 제기는 소위 발포 명령에 이르러 그 혼란이 극에 이른 듯합니다. 피고인 전두환에 대한 적용법조에는 분명히 내란목적살인죄의 형법 제88조가 적시되어 있고, 피고인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이학봉, 이희성 , 주영복, 차규헌에 대하여는 내란행위시 살인의 형법 제87조의 제2호가 적시되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누구에 대한 살인이 내란목 적살인이며, 무엇이 내란행위시의 살인이 되고, 피고인들이 직접 하수인이 아니라면 어떤 행위로 살인을 하였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검찰은 발포명령자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자위권 발동 지시가 사실상 발포명령이고, 자위권발동지시를 한 계엄사령관 배후에 피고인 전두환이 있었으므로 피고인 전두환이 명목상의 발포명령 책임자라고 검찰은 주장합니다. 우리 국민은 과거에 정신적 대통령을 가졌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또 다시 명목상의 발포명령자를 갖는 희극적국민이 되었습니다.
 

어떤 행위를 단죄하려는 것인가

우리 법학도는 형법총론의 범죄론 첫단계에서 범죄의 성립에는 고의 과실 등 주관적 요건과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 즉 객관적 요건이 있어야 한다고 배워 왔습니다. 명목상의 발포명령자에 이와 같은 범죄성립 요건이 과연 무엇인지 검찰공소제기의 뜻을 도시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발포명령자를 가려내어 학살책임자로 공소를 제기하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궁여지책이었다 상정하기에는 그 사안이 너무나 중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목상 또는 사실상이라면 고의도 없고.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도 없습니다. 피고인들의 어떤 행위를 단죄하려는 것인지 검찰의 공소 자체에 의하더라도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세칭 5·18 사태는 전국비상계엄선포와 계엄업무 즉 국법집행과정에서 야기된 사태일 뿐 이것을 형사책임면에서 파악하려 하므으로 논리에 어긋나는 공소의 제기가 되고, 수사의 초점이 흐려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지에서 5 ·18사태를 조명한다면 그 진상규명은 백년 하청이 될 것입니다

5·18 사태에 대해서는 이를 터부시하여 말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국내정세 광주사태의 이해를 위하여 참고로 월간 노동해방문학 1989년 5월호를 발췌하여 뒤에 첨부하고자 합니다. (31쪽에 관련기사 실려 있음)

10·26 대통령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1979. 10.27 북한은 전투태세 강화령 (폭풍 5호)을 발령하고, 동구권 방문중인 참모총장 오극렬을 급거 귀국시켜 해주 세포 곡산지역에 전시동원령을 발령하여 곡산 양덕일대에서 대규모 특수훈련을 실시하는 일방 점화 기폭조등 간첩 공작원을 남파 · 침투시키는 등 북한의 전쟁도발 기도가 노골화하여 미국은 그 제7함대를 한국해역에 파견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음을 상기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이 당시 전국적으로 발생한 시위 소요사태를 정부의 입장에서는 국가안보전 관점에서 시급히 수습하여야 할 당위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 위 기사는 한국논단 1996년 5월호에 실렸던 기사임.

 

12·12사태 바로 알기
질문 포인트
* 5·18특별법은 왜 위헌인가?
* 김재규와 정승화의 부하 장태완 장군이 내전으로 치닫는 무모한 명령을 내렸을 때
부하들의 반응은 어떠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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