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 5.18 토론자료 추천연구도서  광우사태 동영상 상영관

세계기록유산이 될 5.18 대자보: 미 항공모함 유언비어
 

From 06:30 of the video below we hear Kim Hyo Seok, then a wall poster during Gwangju Uprsing, saying, "People at YWCA wrote a wall poster. Someone would decide on the contents and others wrote it down. One guy wrote that the U.S. sent out a fleet to Busan harbor to stop Shun Doo Whan from taking such brutal actions on Gwangju citizens. He wrote that the victory was right ahead of us." Here is the story of how this white lie by the leaders of the riot began.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사태를 일으킬 공작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위 동영상 첫 장면이다. 동영상 첫화면에서 1980년 5월 15일 오후 한시경 유시민 시위대가 시민버스 탈취하여 남대문 앞에서 순경들을 깔아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 범인들이 정말로 학생들이었는가 아니면 시위대로 위장한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었는가? 피할 수 없는 군경들이 그 자리에서 죽게 하는 그런 차량 돌격대가 며칠후 광주에서도 등장하였다.

  동영상 03:40부터는 5월 21일 전라도 각 지역에서 무기를 탈취한 시민군이 트럭 등 각종 군용차량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날 전라도 내 17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무기를 탈취한 시민군 작전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 각 지역 무기고 소재지를 사전에 정확하게 알고 있던 자들은 북한군 특수부대였는가 광주시민들이었는가?

 그리고 동영상 06:30 부터 시민군 김효석이 미 항공모함 유언비어 대자보가 제작된 경위를 증언한다. 미국이 광주시민군을 지원하기 위해 부산항에 항공모함을 파견하였으니 시민군 승리가 눈앞에 있다는 내용의 대자보였다. 영어 자막에서는 "One guy wrote"라 한 것은 5.18측 번역자의 작은 오류이다. 대자보 내용을 불러준 어느 선배가 3인칭이고, 부르는 대로 받아서 쓴 이는 김효석 본인이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광주시민군 지원을 위해 항공모함을 보냈다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30년 후인 오늘의 광주는 어떤 모습이 되었을 것인지 생각해 보라. 만약 광주가 시민군이 수십 년 수백 년 통치하는 해방구로 머물러 있기를 광주인들이 바란 것이었다면, 그것은
http://cafe.daum.net/5.18-truthfinder/7Txo/2
에 있는 1985년도 북한도서 자료 『광주민주국의 출현』에서 북한측이 설명하는 5.18논리와 도대체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특이할 점은 시민군 이재의의 "광주와 미국, 45년 9월과 80년"란 제목의 글에서 북한측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논리가 흐르고 있다. 즉, 그는 "'자주광주'를 세우려는 노력은 오래지 않아 한반도에 진주한 미점령군에 의해 처절하게 파괴되어 버렸다"는 역사논리를 내세운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854&page=14 )

5월 18일 전남대 학생회장 박관현을 여수로 보낸 후에 그가 광주에서 살해되었다는 악성 유언비어를 이용해 시위를 선동했던 윤상원은 김대중의 외곽단체 국민연합 사무국장이었다. 이어 21일 저녁부터 시작된 광주 해방구 시절에 그는 미국이 광주시민군을 지원할 목적으로 항공모함을 부산항에 입항시켰다는 대자보를 작성하게 한 장본인이었으며, 위 동영상의 김효석은 그 대자보를 작성한 장본인이었다. 그런데 이 김효석이 또한 19일에 윤상원이 살인하는 장면을 목격한 증인이다.

http://study21.org/518/capture/5-19killing.jpg

김효석은 윤상원이 살인하는 광경을 이렇게 구술한다:

<그러니까 그놈이 놀래서 하천으로 뛰어 내려분 거여. 하천으로 도망가다가 근데 시민들이 하천으로 뛰어내려가 가지고 그놈을 밟아분 거여. 그때 상원이형이 와서 거기서 큰 돌팍을 들어가지고 대그빡을 찍어부렀다는 것이여, 상원이형 말로는. 그래서 그 기념으로 철모를 가져오고 단검을 ꢘ어왔다는 것이여, 글고 자기 말로는 깨구락지 됐다는 거여. 죽어버렸다는 거여. 그래서 아따 형님 참 대단하요.> (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31&page=67 )

그 사건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모두 그 공수부대원이 현장에서 즉사한 것으로 여겼으나, 그가 병원으로 후송된 후의 생사 여부는 군경 사망자들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하간 윤상원과 그의 동지들은 그 공수부대원은 현장 즉사했다고 인식하였으며, 아마 그것이 그들이 끝까지 무기반납을 거부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설이 가능하다. 김대중의 국민연합 사무국장이라는 공인으로서 자기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여긴 윤상원은 어차피 살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바에는 혁명 혁명 열사의 길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그 어느 국가에서 무장시민군이 도청을 1년, 10년, 30년 장기 점거하도록 방치할 수 있다는 말인가? 광주사태의 경우 그런 상태가 10일을 넘으면 북한에 남침의 결정적 시기를 허용하는 것이므로 5월 27일 새벽의 도청진압작전은 불가피하였다. 광주에 해방구가 설치되었다는 것은 광주가 잠시나마 대한민국 통치 영역을 벗어났다는 것을 말한다. 무장시민군의 도청 점거가 장기화된다는 것은 광주가 독립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앞에서 언급한 북한문건에서는 그렇게 해방구가 설치된 광주에 대하여 "광주민주국" 출현이란 표현을썼다. 바로 그런 논리가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도 보여진다. 김신부가 뉴욕타임스 신문을 가져와 무장시민군에 이런 거짓 희망을 준다: “5일만 더 버티면 우리는 이긴다. 부산에 미 항공모함이 입항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지에 그런 거짓 기사가 실리지 않았음에도 이 영화는 해외 신문 이름까지 팔면서 관객을 기만한다.

5일만 더 버티면 우리는 이긴다. 부산에 미 항공모함이 입항했다.” -- 실로 명대사인가? 아니다. 바로 이 대사에 이 영화 제작진의 악랄함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광주시민군을 지원하기 위해 항공모함을 파병했다는 유언비어는 시민군 지도부가 꾸며낸 유언비어였음에도 엉뚱하게 카톨릭 신부를 등장시켜 그가 그런 거짓말을 입에 담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5.18을 옹호하는 관객들 편에서도 이 대사 때문에 영화 줄거리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5.18측이 아무리 감추려 해도 이 대사 때문에 유언비어가 광주시민군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들통나고 만다. 위의 동영상에서 김효석 등 당시 시민군들이 지금껏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도 바로 그 문제이다. 그때 그들은 미 항공모함이 광주시민군 편인 줄로만 여기고 있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그들은 그들의 운동권 선배들이 거짓말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여기서 5.18 논리가 도전을 받는다.

그들은 부산과 광주와 서울의 미국 문화원들에 방화함으로서 선배들의 거짓말에 대한 책임을 미국에 뒤집어씌우려 해 보았다. 이른바, 미국 책임론은 미 항공모함은 광주시민군 지원병력이라는 유언비어를 맹신했던 것에 대한 강한 반작용이었다. 그들은 속았다고 느꼈다. 누가 속였는가? 광주 운동권 선배들이 속였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이 속였다고 미국에 책임을 뒤집어 씌우며 반미주의를 키웠던 것이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다. 결국 객관적인 사실은 광주 운동권 선배들이 허황된 거짓말을 한 것이다. 결국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체는 그런 허황된 거짓말들이었던 것인가? 여기에 5.18 미화 논리가 직면하는 도전이 있다.

그러나 5일 더 버티어 광주시민군이 이기면 그 다음의 광주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독립국이 되는 것인가? 여기에 5.18 사건 역사논리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미 항공모함이 입항한 이유가 무엇이었느냐에 대한 문제가 있다. 결국 시민군은 주동자들에게 속았던 것인가? 물론 이 동영상에서 당시 시민군들은 주동자 편이다. 그럼에도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아무리 선배들이 한 거짓말들이었다 해도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바로 여기에 시민군이 보기에도 5.18 사건에 대한 역사논리의 난제가 있는 것이다.


http://cafe.daum.net/5.18-truthfinder/7Txo/1
에 있는 1985년도 판 북한도서 자료에서 당시 대자보를 이렇게 인용한다:

<미제7함대소속의 항공모함 2척이 부산항에 정박.

계속되는 전두환일파의 무모한 만행은 내외로부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게 하고있다.

전두환의 멸망은 멀지않았다고 확신한다.

시민여러분!

우리 80만 시민이 일치단결하는 것은 승리를 앞당기는 것이다.>

실로, 영화 화려한 휴가의 김신부의 논리와 일치하는 논리가 아닌가! 실로 광주 80만 시민을 속여 선동할 수 있는 엄청난 유언비어였다. 그럼에도 이제는 광주 시민들이 그 대자보는 허위사실 유포였음을 인정해야 하는 대자보였다. 그럼에도 지금 정신나간 5.18단체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하는 5.18성명서이다.

시민군 지도부는 그런 유언비어 대자보들을 퍼뜨렸을 뿐만 아니라, 궐기대회에서 광고하였으며, 속아넘어간 광주시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윤상원이 그런 허위사실 유포 연설을 감동적으로 했음을 시민군 유석은 이렇게 증언한다: "이날도 어제 감동적인 연설을 했던 30대 가량의 남자가 또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을 끝마친 뒤 "외신을 통해 우리를 돕기 위해 미국 항공모함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305&page=49 ).

시민군 지도부는 그런 유언비어를 대자보와 연설뿐만 아니라 삐라로도 홍보하였는데, 그것을 시민군 김정균은 이렇게 증언한다: "'신현확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나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신현확 씨를 왜 물러나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그때 학생들이 유인물을 한 움큼 줘서 직접 시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유인물의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부산항에 미항공모함이 광주시민을 구하러 왔다는 것." 반미 성향의 시민군 이재의 역시 문제의 그 5.18 유언비어 유인물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한다:

<해방공간 5일째를 맞은 80년 5월 26일 광주시내에는 이런 유인물이 뿌려졌다.

"……미제7연 함대 소속 항공모함 2척이 부산에 정박하여 전두환 일파의 더 이상 무모한 만행에 대해 견제하고 있으며…"라고 이어지는 이 유인물은 마지막까지 '80만 민주시민의 결의'를 통해 '민주정부수립'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때 광주 사람들에게 미국은 유일한 한 가닥 남은 희망일 수도 있었다. 그 날 도청수습대책위 내에서 항쟁지도부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던 핵심적 인물중의 한 사람인 윤상원은 온건파에 속한 사람을 설득하여 투쟁에 동참시키기 위해 이런 논리를 제시한다. "우리의 투쟁은 앞으로 1주일 정도만 더 버티면 반드시 승리한다. 미국이 전두환 군사세력을 돕지 않고 우리를 도울 것이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854&page=14 ) 시민군 지도부 정상용 역시 "더구나 미국이 항공모함을 이동시켰다. 이제 며칠만 더 버티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라는 말로 광주시민을 기만하면서 무기반납에 반대하고 무장폭동을 독려하였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510&page=35 ). 만약 정상용이 미국 항공모함의 도움으로 광주시민군이 승리한다는 그런 어이없는 거짓 희망만 불어넣지 않았어도 조기 무기반납으로 광주사태는 평화스럽게 해결되고, 시민군과 계엄군 등 근 이십 명의 사람이 27일 새벽 전투로 전사하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시민군 지도부는 유언비어 삐라들을 뿌렸을 뿐만 아니라, 차량에 마이크를 싣고 다니면서 유언비어 선전작업을 했던바, 그것을 시민군 손남승은 이렇게 증언한다: "도청 안에는 아주 성능이 좋은 복사기와 마스터기가 있어서 유인물이 대량으로 찍혀나왔다. 차량에 마이크를 싣고 다니면서 시민들에게 협조와 호응을 홍보하고 다녔다. 또한 미항공모함이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며 계속 싸우자는 선전작업들을 해냈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476&page=37 ).

「일어서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5.18극 셋째마당은 동지마당인바, 광주사태 당시 광주시민들이 유언비어에 얼마나 취악하였는지를 이렇게 보여준다:

<동지 2 :…대자보 소식통에 의하면 일주일만 더 버티면 미국항공모함이 와서 우리를 구해준다 했소.
 동지 4 : 일주일, 일주일만 더 버틴다면‥‥ >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4505.html )

http://study21.org/518/photo/history/anti-us-rally.jpg

본래 광주사태 주동자들은 반미주의자들이었으며, 광주사태가 남한 반미주의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왜 반미주의 운동권이 미 항공모함이 광주시민군 편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는가? 본래 그들의 계획은 미국인들을 납치하려는 것이었으며 미국인 소재지도 미리 파악해 놓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납치 대상이었던 미국인들이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른체 시민군에게 유리한 통역을 외국 기자들에게 해 주었다. 그러면 어째서 광주의 운동권이 미국인 납치를 포기하였는가? 그 이유는 그런 과격한 반미는 오히려 광주시민들이 등을 돌리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전략을 바꾸어 미 항공모함은 광주시민군 편이라는 유언비어 성명을 발표하기로 했던 것이다.



위에 캡쳐된 임낙평(전남 사회문제 연구소 연구원)의 연구논문에서 광주 운동권의 속과 겉이 어떻게 달랐는지 살펴보라:

<윤상원 등 일부는 광주 주재 미국인들의 소재를 파악하고,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때 그들을 체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26일, 항쟁 지도부의 대외적 창구 ·광주 시민들의 대변자 윤상원은 두 차례의 내 외신 기자 회견을 가졌다. 그에게는 광주 항쟁의 진실을 세계 만방에 알리고, 항쟁의 확산을 꾀하며, 도청 투쟁 위의 공신력을 획득하게 하는 것이 의무였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624.html )

  본심은 미국인 납치였던 자가 80만 광주시민을 대표하여 기자 회견을 가졌다. 5월 18일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로 80만 광주시민을 속였고, 며칠 후 해방구 시절에는 미 항공모함이 광주시민군 편이라는 유언비어로 또 다시 80만 광주시민을 속였던 윤상원이 달변으로 외신 기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금  5.18단체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 하는 유언비어 성명서는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6_2053.html 에 있으며, 여기에 "미 제7함대 소속 항공모함 2척이 부산에 정박하며 전두환 일파의 더 이상의 무모한 만행을 견제하고 있으며"라고 적혀 있다. 이 대자보 목격자인 법철 스님은 그 광경을 이렇게 증언한다:

<광주거리의 도처에는 벽보의 대자보(大字報)가 시민군을 독려하고 있었다. 대자보는 하얀 대형종이에 검은 매직 글씨로 광주시민에게 결사투쟁을 하자는 선동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대자보에 강조되는 부분에는 붉은 매직 글씨로 “미 7함대의 항공모함이 광주시민을 구원하고자 부산항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서울과 부산, 대구, 등의 전국의 도시의 시민이 무장봉기하여 광주를 지원하고자 곧 도착할 것이니 조금만 참고 결사투쟁하자는 선동이었다. 도대체 누가, 미국의 항공모함의 병력이 광주시민을 구원하고자 출동했다고 하며, 전국의 도시에서 무장시민이 광주시민을 구원하고자 출동했다는 선동을 시작했을까? 이제 와서 생각하면 허망한 새빨간 거짓말로 시민군의 결사항전을 독려하는 것이었다.> (http://cafe.daum.net/518cafe/IEXM/13 )

5.18측은 여전히 그 5.18사기꾼들의 거짓말을 맹신하면서 소설을 쓰는데, 그 한 예가 박호재의「다시 그 거리에 서면」이란 제목의 서술에서 다음의 단락들이다:

<"언니, 저 벽보 봐"
순분이가 가리킨 곳에 큰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미국 항공모함 부산 앞바다에 정박중.

우리의 우방인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는 나라입니다. 광주의 민주시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금 부산에 미국 항공모함이 정박 중에 있습니다. 더 이상 광주는 피를 흘리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들은 동요하지 마시고 도청에 집결합시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4546.html 의 5.18소설들 중에서 "다시 그 거리에 서면" 6항)

그러나 그들이 인정하여야 하는 진실은 미국은 북한의 남침을 견제하기 위해 항공모함을 보냈다는 사실이다. 그 객관적인 사실을 신동아 남찬순 기자는 "미국은 광주사태를 어떻게 보았나"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미국의 군사적인 조치는 신속한 것이었다. 22일 미국은 한국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그들의 확고한 결의를 재확인하고 이에 대한 실증을 보이기 위해 오끼나와에 있는 조기경보기 2대와 필리핀의 수빅만에 정박중인 항공모함 코럴시호를 한국근해에 긴급출동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코럴시호는 인도양과 서태평양해역에서 4개월간의 작전임무를 마치고 캘리포니아로 귀항중 필리핀의 수빅만에 들르고 있었다.
5만톤급인 코럴시호는 50대 이상의 전투기와 폭격기 등을 탑재한 항공모함으로 한국 남해부근에 주둔해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다(이 항공모함은 6월 3일 철수). 조기경보기 E3A 두대는 오끼나와의 가데나 미공군기지에 도착, 대북한 정찰임무에 돌입했다. >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866&page=13 )

이상우 저널리스트 역시 "12·12세력과 「광주사태」와 미국"이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이같은 결정에 따라 미국은 즉각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대응 안보조치를 취했다. 그 내용은, 10·26때도 취했던 것과 같은 기동함대의 파견과 조기경보기를 통한 북한측 동향에 대한 감시기능의 강화였다. 미국은 필리핀의 수빅만에 정박중이던 샌프란시스코로 귀항예정인 5만t급 항공모함 코럴시호의 항로를 바꿔 한국해역으로 급파하는 한편, E3A 조기경보통제기 2대를 예정보다 2개월 앞당겨 일본의 오끼나와에 급파, 한국지역에서 활동토록 했다. 또한 일본의 요꼬쓰까항에서 최근 보수를 마친 항모 미드웨이호에 대해서도 일단 유사시에는 단시간내에 코럴시호와 합세할 수 있도록 경계태세령을 내렸다.
항모 2척의 전력은 당시 한 ·미지상공군력과 합칠 경우 북한의 공군력을 제압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이었으며, 유사시 한반도의 제공권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전략변수였다. 이와 함께 「글라이스틴」 주한 미대사는, 북한이 남침해 올 경우 미국은 즉각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경고를 한 외교경로를 통해 북한측에 통보했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864&page=13 )

<「워싱턴 포스트」지 5월 27일자보도는 당시 미국 고위관리들의 기본관심이 무엇이었으며 그들이 광주와 같은 민중항쟁으로부터 어떤 형태의 심각한 위기의식을 같이 느끼고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밝혀준다
"'(한국의) 상황은 거의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하다'고 정보에 정통한 한 미국 관리가 말했다. 그는 1975년 사이공이 패망한 이후 아시아의 미국 맹방이 처한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성명을 발표한 것 이외에 미국이 취한 주요 조치는 두 개의 공중지휘용 공군기와 항공모함 코랄시호를 선봉으로 한 해군부대를 북한에 대한 경고용으로 한반도 해역에 배치한 일이었다. >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859&page=13 ).

 이렇듯 광주사태 때 부산항에 입항한 미 항공모함의 진실은 광주사태를 틈탄 북한의 남침을 견제하자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광주시민군을 지원할 목적으로 입항하였다고 대자보를 붙인 것은 희대의 사기극이었다. 그런데, 그 5.18 유언비어 대자보를 지금 5.18 단체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려고 하니 가히 희대의 희극이자 비극이 아니겠는가!


복음과 문화


북한판 5.18도서가 암시하는 시민군 윤기권의 월북 이유

왜 우리는 광주사태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가?


 

광주사태 바로 알기
질문 포인트

* 광주시민군 지도부가 미 항공모함 뮤언비어를 조작해 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 광주시민군 지도부는 미 항공모함 뮤언비어를 어떤 방법으로 유포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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