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한국역사  광주사태 5.18 토론자료 광우사태 동영상 상영관

정승화(전계엄사령관)의 공소장, 최후진술, 판결문 
 

공소장(전문)

△피고인 인적사항

구속 1979년 12월 31일

본적 경북 금릉군 봉산면 인의동 719

주소 서울 강남구 학동 92의 59

직업 전육군참모총장

성명 정승화

생년월일 1929년 2월 27일생(50세)

□죄명 내란방조

□적용법조 형법 제89조, 같은 법 제87조 제1호, 같은 법 제32조 피고인은 본적지에서 정시영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1947년 3월 서울 광신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4월 육군사관학교 제5기생으로 졸업과 동시 육군 소위로 임관된 이래 육군방첩부대장, 제7사단장, 육본기획관리참모부장, 제3군단장, 육군사관학교장을 거쳐, 1977년 12월 24일 제1군 사령관으로 보직 근무중 1978년 5월 1일 육군대장으로 승인되었고, 1979년 2월 1일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어 근무하다가 같은 해 12월 13일 그 직에서 해면된 자로서 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주범인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1080년 1월 28일 육본 계엄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수괴 미수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상고심 계류중)와는 1962년경부터 알게 되어 동향인으로서 친밀히 지내오고 있었으며, 위 김재규가 고 박정희 대통령과 동향이며 군 동기생으로서 상당히 총애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피고인의 육군참모총장 임명시 동인의 천거를 힘입은 바 있음을 알고 평소 고맙게 생각하여 오던 중, 1979년 10월 26일 16시 15분경 위 김재규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고 같은 날 18시 35분경, 서울 궁정동 소재 위 김재규의 중정부장 집사무실에 도착, 그곳에서 전 중앙정보부 제2차장보 대통령 각하와 만찬이 있다는 말을 듣고 대기하다가 같은 날 19시 10분경 위 김재규가 나타나 “각하와 만찬이 끝나는 대로 돌아올 터이니 식사를 하면서 기다려 달라”고 하므로 위 김정섭과 함께 집무실 옆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부산 및 마산사태를 비롯하여 민심의 동향과 하사관 주택 건립문제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무고 있을 무렵 가까운 곳에서 별안간 20여 발의 총성이 나고 곧 위 김재규가 피묻은 와이셔츠 차림에 당황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면서 나타나 “총장 큰일났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합시다”라고 하면서 피고인의 팔을 잡아끌어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같은 날 19시 45분경 위 궁정동 중정부정 집무실을 출발하여 뉴내자호텔 앞과 광화문을 거쳐 3·1고가 도로로 가는 과정에서 위 김재규의 태도와 표정 및 언행 등으로 보아 대통령 각하의 만찬장소에서 각하의 신변에 관련된 위급사태가 발생된 것으로 추측하여 위 김재규에게 수차 “무슨 일이냐”고 물었으나 동인은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가 차중에서 대통령 각하의 서거표시로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추켜 올렸다가 밑으로 내리면서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므로 위 김재규가 대통령 각하와의 만찬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범인이 누구인지 알 것이며 혹시 그 범인이 차지철이나 그의 하수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외부 침입입니까, 내부 소행입니까”라고 물었으나 이에 대답하지 않고 다만 “큰 일입니다. 金日成이가 알면 휴전선이 문제이고, 국내는 유형사태가 발생될까 우려됩니다. 보안을 유지하고 빨리 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라고 하는 대통령 각하의 시해범인, 시해현장 및 사고경위 등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고 보안 유지와 계엄선포만을 강조하므로 동인에게 “내부겠지요”라고 대통령 각하 측근의 범행이 아니냐는 취지로 물었어도 이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고 “계엄선포를 했을 때 어느 부대가 출동할 수 있느냐, 국가의 장래가 정 총장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위 김재규가 대통령 시해범일지도 모른다는 외심을 가지고 계속하여 차를 타고 남쪽으로 가다가 병력지휘상 육본으로 갈 것을 제의하여 육본을 향하여 가던 중, 후암동 소재 병무청 앞을 통과한 즈음 위 김재규가 사탕 같은 껌(네모난 계피껌)1개를 주므로 이를 받아 먹으려다가 그 속에 약물이 들어 있어 동인에게 이용당하지 않을까 의심하면서 위 껌을 슬그머니 바닥에 버렸으며, 같은 날 20시 5분경 육본에 도착하여 위 김재규와 같은 차에 동승하였던 위 김정섭 및 위 김재규의 수행비서관 박홍주 등을 동 총장실로 안내하여 대기하도록 하고 상황실로 가 계엄선포를 위하여 국방장관, 합참의장, 한미연합사부사령관 등 군수뇌들을 전화로 비상소집하고 전군에 비상발령을 하고, 계엄군의 서울 진주를 위하여 육군 ○○부대의 출동을 지시한 후 대통령 각하 시해범인이 각하의 측근이라면 청와대 내부의 소행인지 또는 위 김재규의 소행인지를 명확히 확인하기 위하여 수경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 부대에 이상 없느냐, 병력은 모두 장악하고 있느냐”라고 물어 동인으로부터 “아무 이상이 없다”라는 대답을 듣자 순간적으로 청와대 내부의 소행은 아니고 위 김재규의 소행으로 확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위 김재규는 현직 중앙정보부장으로서 막강한 조직과 관련이 있고 필시 그 배후에는 방대한 추종 세력이 관련되었을 것이며, 대통령 시해 후에는 나라의 실권자가 될 것으로 생각하여 이에 동조하는 것만이 현명한 처신이라고 믿은 나머지, 위 김재규가 수괴로서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으로 대통령을 시해하고 육본으로 가서 중앙정보부의 조직력과 권한을 이용하여 군부를 장악, 무력으로써 내란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면서 위 김재규의 범행을 돕기 위하여

1. 같은 날 20시 25분경 동 상황실을 나와 총장실로 가서 위 김재규에게 하등의 보고 의무가 없음에도 동인의 범행을 돕고 있다는 표시로 계엄을 위한 군수뇌 사실 및 병력출동 상황을 보고하는 한편, 계엄에 관한 동인의 계획을 확인하기 위하여 “계엄부대가 출동하게 되면 어디를 먼저 점령해야 됩니까”라고 물어 동석한 위 김정섭으로부터 “○○○” 등이라는 답변을 듣고 이를 메모하고,

2. 같은 날 20시 30분경에 同所에 도착한 당시 국방부장관 노재현으로부터 “무슨 일이냐”는 질문을 받고 그간의 상황에 대하여 상세히 보고할 의무가 있음에도 “각하가 만찬중에 돌아가셨습니다. 자세한 것은 김 부장에게 물어보십시오”라고만 답변함으로써 위 김재규의 범행 일체를 은폐하고,

3. 같은 날 20시 40분경 위 김재규의 신변을 보호할 의도로 대통령 시해범인 체포를 위한 청와대 경호실의 출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동소에 도착한 수도경비 사령관에게 청와대 포위를 지시하자 동인으로부터 “청와대를 근접 포위하면 충돌 우려가 있으므로 원거리 포위가 좋겠습니다”라는 건의를 받고 동인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후 같은 날 21시경에는 당시 청와대 경호실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호실 병력을 철저히 단속하고, 수도경비 사령관과 협조하라”고 지시하고,

4. 같은 날 21시 20분경 이미 출동 지시한 육군 ○○부대의 서울 진주가 통행금지 시간 이전이 됨으로써 갑작스런 군의 출동으로 국민들의 동요가 있으면 위 김재규의 범행에 장애가 될 것으로 판단하여 위 병력 출동을 중지시킬 것을 육군참모차장에 지시하고,

5. 같은 날 21시 30분경 국무총리, 내무 및 법무장관,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 등이 同所에 도착, 총장비서실에서 위 김재규 등과 합석하여 위 김재규는 “각하의 서거 사실을 3일간 보유유지하고, 빨리 계엄을 선포하자”고 주장하고, 국무위원들을 보안유지가 곤란하다고 반대하는 등 논의를 하다가, “국무회의는 23시 국방장관실에서 개최하고, 계엄은 다음날 새벽 4시를 기하여 선포시행”하기로 합의하여 국무위원들이 국방장관실에서 개최하고, 계엄은 다음날 새벽 4시를 기하여 선포시행하기로 합의하여 국무회의의 동정을 알고자 국방장관실로 가다가 위 김계원을 만나 동인의 요청으로 그 옆방인 장관 보좌관실로 가서 국방장관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동인으로부터 “각하를 시해한 범인이 김재규이다”라는 말을 들은 국방장관이 체포지시를 하므로 하는 수 없이 위 김재규의 신병을 일단 확보하되 사태의 추이를 계속 살펴보기로 하고, 육본 벙커로 돌아와 헌병감과 보안사령관에게 김재규를 시내를 있는 安家에 정중히 모자라고 지시하여 위 김재규의 신병안전을 도모하고, 그 다음날인 27일 0시 40분경 총장실에서 위 김계원으로부터 사건 현장으로 범인으로부터 빼앗었다는 리벌버권총 1정을 제출받으면서도 위 김재규의 범행과 그 배후세력의 거사 진행을 도와주기 위하여 사건현장의 위치와 상황, 범행경위, 배후세력 등을 조사하여 신속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가 같은 날 01시경 보안사령관으로부터 “김재규가 범인임에 틀림없으니 조사하여야겠다”는 보고를 받고 비로소 조사지시를 하는 등 수괴로서 내란행위를 하다가 미수에 그친 위 김재규의 범행을 방조한 것이다.
 

정승화 피고 최후 진술
 

참모총장의 직위를 가졌던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10월 26일 밤 김재규는 일을 저지르고 나서 차에 같이 타고 육본 벙커로 가면서 대통령 서거 사실을 알려주고 소란이 일어나면 큰일이라면서 계엄의 필요성을 환기시킬 때 나는 중앙부장이 거짓말할 리 없다고 생각, 그 순간부터는 국가의 장래 문제만 걱정했다.

북괴가 침략하면 큰일일 뿐더러 민심의 동요로 내란으로 확대된다거나 군이 연루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생각 등으로 범인이 누구인가는 생각지도 못했다. 15분간 차를 타고 가면서 김재규로부터 들은 것이 전부였고, 육본에 도착해서는 김재규는 다른 방에 있었고 나는 총장으로서 최선의 조처를 다했다. 30~40분간 비상조치를 취한 후 장관들이 김재규와 사태 수습을 논의하는 것이 궁금해 왔다갔다 했었고, 10시 30분경에는 총리 이하 장관들이 회의실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으나 나는 각료가 아니기 때문에 계속 내일만 했다. 11시 30번경 상급자들이 수습책을 알기 위해 장관실에 갔다가 김계원 으로부터 김재규가 범인이리는 말을 듣고 곧바로 내려와 헌병감과 보안사령관에게 체포를 지시했다. 이상이 그날 김재규에게 이용당했거나 접속한 것의 전부다. 나는 대통령 서거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북괴가 침략하거나 사건 연루자들이 내란을 일으킬 위험에 대비해 최선의 조치를 다했다.

전군과 수도권 부대에 출동 태세를 지시했고 계엄준비 등 군을 파악하고 장악하기 위해 전신경을 집중했다. 1~2시간 내에 이렇게 막대한 일을 치르며 최선을 다한 것이다.

나는 또 아무한테도 임무나 지시를 받은 적이 없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했다면 모르되 내가 취한 사태 수습에 대해 잘못된 것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김재규가 나를 이용하려 함으로써 온 국민에게 의혹을 사게 한 것은 부끄럽다. 또 총장으로서 군의 모든 전우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끝으로 32년 6개월 동안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했고 이번 사건에서도 할 일을 다했지만 능력이 미진해 국민과 장병들에게 누를 끼쳤다면 용서를 바랄 뿐이다.
 

판결문(전문)

□범죄사실

피고인은 1979년 2월 1일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어 근무하다가 같은해 12월 13일 그 직에서 해면된 자로서 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주범인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는 1962년경부터 알게 되어 동향인으로서 친밀히 지내오고 있었으며, 위 김재규가 고 박정희 대통령과 동향이며 군 동기생으로서 상당히 총애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피고인의 육군참모총장 임명시 동인의 천거에 힘입은 바 있음을 평소 고맙게 생각해 왔다. 1979년 10월 26일 16시 15분경 위 김재규로부터 저녁식사 초대를 받고 18시 35분경, 서울 종로구 궁정동 소재 위 김재규의 중정부장 집무실에 도착, 그곳에서 전 중앙정보부 제2차장보 김정섭을 만나 상호 초면인사를 나눈 후, 위 김정섭으로부터 김재규가 대통령 각하와 만찬이 있다는 말을 듣고 대기하다가 19시 10분경 위 김재규가 나타나 “각하와 만찬이 끝나는 대로 곧 돌아올 터이니 식사를 하면서 기다려 달라”고 하므로 위 김정섭과 함께 집무실 옆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부산 및 마산사태를 비롯하여 민심의 동향과 하사관 주택건립 문제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무렵 가까운 곳에서 별안간 20여 발의 총성이 나고 곧 위 김재규가 피묻은 와이셔츠 차림에 당황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면서 나타나 “총장 큰일났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합시다”라고 하면서 피고인의 앞을 잡아 끌어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19시 45분경 궁정동 중정부장 집무실을 출발하여 뉴내자호텔 앞과 광화문을 거쳐 3·1고가도로로 가는 과정에서 위 김재규의 언행과 표정 등으로 보아 대통령 각하의 만찬장소에서 각하의 신변에 관계된 위급사태가 발생된 것으로 추측하여, 위 김재규에게 수차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동인은 계속답변을 회피하다가, 대통령 각하의 서거 표시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추겨 올렸다가 내려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므로, 위 김재규가 대통령 각하와의 만찬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범인이 누구인지 알 것이며, 그 범인은 차지철이나 그의 하수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외부침입입니까, 내부소행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나 김은 이에 대답하지 않고 다만 “큰일입니다. 김일성이가 알면 휴전선이 문제이고, 국내는 유혈사태가 발생될까 우려됩니다. 보안을 유지하고 빨리 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대통령 각하의 시해범인, 시해현장 및 사고경위 등에 관하여는 말하지 않고, 보안유지와 계엄선포만을 강조했다.

동인에게 “내부겠지요”라고 대통령 각하 측근의 범행이 아니냐는 취지로 물어도 이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고 “계엄선포를 했을 때 어느 부대가 출동할 수 있느냐, 국가의 장래가 정 총장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위 김재규가 대통령 시해범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지고 계속하여 남산 쪽으로 가다가 병력지휘상 육본으로 갈 것을 제의하여 육본을 향하여 가던 중, 후암동 소재 병무청 앞을 통과할 즈음 위 김재규가 사탕 같은 껌(네모난 계피껌)1개를 주므로 이를 받아 먹으려다가 그 속에 약물이 들어 있어 동인에게 이용당하지 않을까 하면서 위 껌을 슬그머니 바닥에 버릴 정도로 동인에 대한 깊은 의혹을 가진 채 20시 5분경 육본 벙커에 도착했다.

피고인은 위 김재규와 위 차에 동승하였던 위 김정섭 및 김재규의 수행비서관 박홍주 등을 동 벙커 총장실로 안내하여 대기하도록 하고, 상황실로 가서, 계엄선포를 위하여 국방장관, 합참의장, 한미연합사령관 등 군수뇌들을 전화로 비상소집하고 전군에 비상 발령을 하고, 계엄군의 서울 진주를 위하여 ○○부대 출동을 지시한 후 대통령 각하 시해범인이 각하의 측근이라면 청와대 내부의 소행인지 또는 위 김재규의 소행인지를 명확히확인하기 위하여 수도경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부대에 이상 없느냐, 병력은 모두 장악하고 있느냐”라고 물어 동인으로부터 “아무 이상 없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피고인은 순간적으로 청와대 내부의 소행은 아니고 위 김재규의 범행으로 확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위 김재규는 현직 중앙정보부장으로서 막강한 조직과 권력이 있고 필시 그 배후에는 방대한 추종세력이 관련되었을 것이며, 대통령 시해 후에는 나라의 실권자가 될 것으로 생각하여 이에 동조하는 것만이 현명한 처신이라고 믿은 나머지, 위 김재규가 수괴로서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으로 대통령을 살해하고 육본으로 가서 중앙정보부의 조직력과 권한을 이용하여 군부를 장악, 무력으로써 내란행위를 하고 있다는 정을 알면서 위 김재규의 범행을 돕기 위하여

1. 같은 날 20시 25분경 동 벙커 상황실을 나와 총장실로 가서 위 김재규에게 하등의 보고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동인의 범행을 돕고 있다는 표시로 계엄을 위한 군수뇌 소집사실 및 병력출동 상황을 보고 하는 한편, 계엄에 관한 동인의 계획을 확인하기 위하여 “계엄부대가 출동하게 되면 어디를 먼저 점령해야 됩니까”라고 묻고, 동석한 위 김정섭으로부터 답변을 듣고 이를 메모함으로써 계엄사령관의 입장으로 된 피고인이 오히려 김재규의 계획에 따른 행동을 보여 주었다.

2. 같은 날 20시 30분경 등 벙커에 도착한 동시 국방장관 노재현으로 부터 “무슨 일이냐”는 질문을 받고 그간의 상황에 대하여 상세히 보고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하가 만찬중에 돌아가셨습니다. 자세한 것은 김부장에게 물어 보십시오”라고만 답변함으로써 위 김재규의 범행 일체를 은폐·묵인하여 동인이 범행에 나아가고 있음을 용이하게 했다.

3. 같은 날 20시 40분경 위 김재규의 신변을 보호할 의도로 대통령 시해범인 체포를 위한 청와대 경호실의 출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동 벙커에 도작한 수도경비 사령관에게 청와대 포위를 지시하고 동인으로부터 “청와대를 근접 포위하면 충돌 우려가 있으므로 원거리 포위가 좋겠습니다”라는 건의를 받고, 동인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같은 날 21시경에는 당시 청와대 경호실 차장 이재전에게도 전화를 걸어 “경호실 병력을 철저히 단속하고 수도경비 사령관에게 청와대 주변에 병력을 배치토록 지시하였으니 충돌이 없도록 직접 수도경비 사령관과 협조하라”고 지시했다.

4. 같은 날 21시 20분경 이미 출동지시한 ○○부대의 서울 진주가 통행금지 시간 이전이 됨으로써 갑작스런 군의 출동으로 국민들의 동요가 있으면 위 김재규의 범행에 장애가 될 것으로 판단하여 위 병력출동을 중지시킬 것을 당시 육군참모차장 이회성에게 지시했다.

5. 같은 날 21시 30분경 국무총리, 내무 및 법무장관,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 등이 동 벙커에 도착, 총장실에서 위 김재규 등과 합석하여 위 김재규는 “각하의 서거 사실을 3일간 보안유지하고 빨리 계엄을 선포하자”고 주장하고 국무위원들은 보안유지가 곤란하다고 반대하는 등 논의를 하다가 “국무회의는 23시 국방장관실에서 개최하고, 계엄은 다음날 오전 4시를 기하여 선포시행”하기로 합의하여 국무위원들이 국방장관실로 이동하고 난 후, 같은 날 23시 30분경 국무회의의 동정을 알고자 국방장관실로 가다가 위 김계원을 만나 동인의 요청으로 그 옆방인 장관보좌관실로 가서 국방장관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김계원으로부터 “각하를 시해한 범인이 김재규이다”라는 말을 들은 국방장관이 체포지시를 하므로 하는 수 없이 위 김재규의 신병을 일단 확보하되 사태 추이를 계속 살펴보기로 하고, 육본 벙커로 돌아와 헌병감과 보안사령관에게 김재규를 시내에 있는 安家에 정중히 모시라고 지시하여 위 김재규의 신변안전을 도모하고, 그 다음날인 27일 0시 40분경 총장실에서 위 김계원으로부터 사건 현장에서 범인으로부터 빼앗았다는 리벌버권총 1정을 제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 1시경 보안사령관으로부터 “김재규가 범인임에 틀림없으니 조사하여야겠다”는 보고를 받을 때까지 위 김재규의 범행과 그 배후세력의 거사 진행을 도와주기 위하여 동인의 범행 음모 및 배후세력에 관한 조사 및 신속한 대책조차 강구하지 아니하는 등 수괴로서 내란 행위를 하다가 미수에 그친 위 김재규의 범행을 방조한 것이다.
 

□증거요지

피고인에 대한 위 판시 사실은

1. 피고인의 이 법정에서의 위 판시 사실에 일부 부합하는 진술부분

1. 증인 윤병서, 같은 김정섭의 이 법정에서의 위 판시 사실에 일부 부합하는 진술부분

1. 수명법무사의 증인 노재현, 같은 김진기, 같은 김계원에 대한 각증인 신문조서중 위 판시 사실에 일부 부합하는 진술부분

1. 수명법무사의 검증조서중 위 판시사실에 일부 부합하는 기재부분

1. 수명법무사의 대법원 80도 306호 내란미수 등 피고사건 기록에 대한 검증조서 중 위 판시 사실에 부합하는 기재

1. 검찰관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제2회, 제3회 각 피의자 신문조서 중 위 판시 사실에 부합하는 각 진술기재

1. 검찰관 작성의 노재현, 같은 이희성, 전성각, 김계원, 이재전, 김정섭, 윤병서에 대한 각 진술조서 중 위 판시 사실에 일부 부합하는 각 진술기재 부분

1. 서기 김호영이 육군본부 계엄 보통 군법회의 79보군형공제 88호 김재규의 내란수괴 미수 등 사건에 관한 판결문 등본 및 육군계엄 고등군법회의 79고군형항 550호 동인의 내란수괴 미수 등 사건에 관한 판결문 등본 중 위 판시 사실에 부합하는 기재를 종합하면 이를 인정할 수 있으므로 판시 사실은 그 증명이 충분하다.
 

□법령의 적용

피고인의 판시 소위는 형법 제89조, 제87조 제1호에, 제32조에 제1항에 해당하는 바, 소정형 중 무기징역형을 선택하고, 종범이므로 같은 법 제32조 제2항, 제55조 제1항 제2호에 의하여 법률상 감경한 형기범위내에서 피고인을 징역 10년에 처하고 같은 법 제57조에 따라 이 판결 선고전 구금일수 중 70일을 위형에 산입한다.
 

□변호인 주장에 대한 판단

1. 변호인은 피고인의 이건 범행은 中止未遂이며 따라서 그 형도 면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므로 살펴본다.

이 군법회의가 적법하게 조사한 증거 등을 살펴보면 이 사건의 정범인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직에 있던 자로서 그 부하직원 박홍주, 같은 박선호 및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 등과 공동하여, 1979년 10월 26일 18시경 서울 종로구 궁정동에 있는 중앙정보부 식당에서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 및 그 수행경호원 4명을 살해하고 폭동을 야기한 채 범의를 계속하여, 육본으로 가서 대통령 서거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지 말고 계엄령의 선포를 군부 및 국무위원에게 요구하다가 김계원의 제보에 의하여 같은 날 23시 30분경 체포됨으로써 위 폭동의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미수에 그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위 사실에 위 인정된 판시 사실을 비추어 보면 김재규의 내란행위 및 피고인의 이건 방조행위는 김계원의 행위로 말미암아 그 실행행위를 종료하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김재규의 범행행위가 동인의 자의에 의하여 중지한 것이든가, 그 실행행위를 종료하지 못한 것이 피고인의 자의에 의한 중지행위로 말미암은 것임을 전체로 한 변호인의 이건 주장은 이유 없음이 명백하다.

2. 변호인은 또한 내란죄는 필요적 공범의 일종으로서 집합적 범죄인바, 형법 제37조 각호 소정의 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면 따로 이 같은 법 제32조를 적용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피고인의 이런 행위는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주장하므로 살펴본다.

형법 제32조의 방조범 규정은 타인의 범죄를 방조한 경우 적용되는 것이 법규정상 명백한 바, 위 규정에서의 타인의 범죄라 함은 그 죄의 형태를 가리지 아니하는 것으로 그 타인의 범죄는 함은 그 죄의 형태를 가리지 아니하는 것으로 그 타인의 범죄는 단독범이나 공동정범, 나아가 집합범과 같은 필요적 공범을 불문한다.

만일 변호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내란죄와 방조범의 관계를 해석한다면 같은 법 제87조 소정의 내란행위자 중 방조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에 국한될 것이고, 이들만이 방조범으로서의 처벌대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구형법 제79조에 규정된 바와 같은 내란 집단 밖에서 병기, 금진, 식량을 공급하거나 기타 행위로 내란 해위자를 방조한 자는 내란 행위자의 종범임이 분명할 뿐만 아니라, 또한 동법 79조(내란 방조죄)의 법정형은 같은 법 제77조 제3호(내란죄) 단순 노동자보다도 중한 형으로 규정할 만큼 처벌할 수 있으므로 중복하여 규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이러한 해석이 국가의 존립이라는 중대한 법익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내란죄의 본질에도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으므로 결국 변호인의 주장이 어느 모로 보나 타당하지 아니하므로 이 군법회의는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이상의 이유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1980년 3월 13일

국방부계엄보통군법회의 재판장 해군중장 정원민

심판관 해군소장 김재봉

심판관 공군소장 김인기

심판관 육군소장 최갑석

법무사 육군중령 심한준
 


*정승화의 혐의는 김재규의 내란행위 방조.
 

10.26사태 바로 알기
질문 포인트

* 정승화는 김재규로부터 대통령 서거 사실을 듣고도 무슨 사고였으며,
대통령 시해범인이 누구였는지에 대해 전혀 의문을 느끼거나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외국서점 해외쇼핑, 국내 쇼핑 전체 카테고리 의류/속옷/패션 쇼핑몰 종합쇼핑몰 금주의 인기 할인쿠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