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역사 에세이
저능아 진중권의 이상한 반미 논리
에번스 리비어 미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의 지난 5월 2일(2005년) 한ㆍ미간 ‘동맹 동반자관계’에 대한 연설을 하였는데, 연합뉴스는 미국이 "동북아 균형자론 이해할 만"하다고 했다는 요지의 기사를 보도하였다. 그러나, 사실 <미국 "동북아 균형자론 이해할 만">이라는 재목의 이 기사 제목은 잘못된 것이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노무현이 한국 외교의 시계를 백년 뒤로 후퇴시켰다. 한번 망가진 한미 관계를 언제든 우리가 원할 때 복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길이 없다. 미국이 수석부차관보의 입을 통해서 표명한 미국 정부의 입장을 조선일보 독자들이 잘 이해하였던 바, 여기 세 분의 백자평을 소개한다:

김정은님: "미국이 오바하는군요. 현 정부는 그렇게까진 생각 못해요. 한번 튀어볼려고 그런건데." 이장형님: "한미동맹을 무시하고 균형자 역활을 해볼테면 해보라는 얘기처럼 들린다. 한국이 원하면 미국은 빠져주겠다는 뜻이고 그 책임은 미국에 없다는 말이고 알아서 하라는 말이다. 과연 스스로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 배동수님, "누구나 이해는 다 한다. 그러나 중국.북한에 붙어서 뭘 해보겠다는 치명적 전략적 오류가 드러나 국익은 커녕 잘못하면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되었다가 결국 북방 국가에 종속되는 비운을 맞게될까 걱정해서 그런다. 이인간들한테 국가 맡긴 것이 큰 실책이다. 국민은 두 번이나 대통령 선택에 전략적 오류를 범했다."

미외교 당국자가 "서울의 외교정책이 assertive 해지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아마, 커뮤니케이션 용어를 잘 모르는 외신 기자가 미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의 assertive 라는 단어를 소화해 내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던 듯하다. 연합뉴스는 이 표현을 "서울의 외교정책이 더욱 자신감있고 자기주장을 담은(assertive) 것이 돼 감을"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assertive 에는 "단호히 말하는"이란 긍정적인 뜻과 더불어 "고집 불통의" 혹은 "독단적인"이란 뜻이 있다. 그런데, 외교에서 assertive 란 의사소통의 단절을 의미할 수 있다.

대화는 상대방에게도 제안의 여지를 남겨줄 때 가능하다. How about this?(한번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는 협상의 여지를 남겨주는 언어이다. 그러나, 어느 한편에서 This is the period!(내 말 끝났으니 내가 하라는 대로 해!)는 상대방더러 말대꾸하지 말라는 강경 어조이다. 한편에서 assertive 하게 나오면, 다른 편에서는 지고 들어가든가 아니면 같이 assertive 하게 나와 말싸움을 하든가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독도의 소유권을 놓고 한국과 일본이 같이 assertive 하게 나온다. 외교 언어가 서로 assertive 하게 나오는 것은 싸우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한국과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지금 미국은 몹시 당혹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북핵 문제는 미국의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한데, 노무현 정부가 우리는 동북아 균형자 노릇할테니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고 하면 미국은 속수무책이 된다. 따라서, "서울의 외교정책이 assertive 해지고 있다"는 표현은 미국이 한국 정부가 미국은 입닥치고 가만 있어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을 이해했다는 표현이 아니다. 이것은 미국이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외교적 의사소통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때에 외교적 의사소통이 막혔는데 어떻게 이해한다는 말인가? 다만, 미국이 이해할 만하다는 것은 진중권의 반미논리의 단골메뉴인 카쓰라-태프트 밀약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할 만하다는 말이다.

지금 한국 정부의 비상식적인 대미 외교를 미국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백년 전 미국과 일본간의 카쓰라-태프트 밀약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이다. 그래서 미 수석차관보는 “때로는 비극적인, 그래서 쓰라린 경험의 상처”에 한국민이 가위눌렸기 때문에 그 열망의 배경을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장관도 지난해 12월 7일 부장관으로서 한국 의원단을 맞은 자리에서 “내년 100주년을 맞는 카쓰라-태프트 밀약의 경우에서처럼 미국의 역할이 잘못된 역사가 있었고, 그래서 한국 국민 사이에 지금도 우려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카쓰라-태프트 밀약은 미국의 일보 정치외교학자들이 알 뿐 대부분의 미국 국민들은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이 지금 미국 정부가 한국에 공식적인 반응을 보여주어야 할 만한 유명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럴 때 미국 앞에는 두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이미 한미 관계는 치유 불가능하니 미국도 포기하자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일전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일본에 방문하여 미국은 일본의 안보리 가입을 지지한다고 말했을 때 그 의미는 앞으로는 미국의 거래 상대를 일본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진중권의 반미 논리의 승리인가? 진중권은 우리나라가 미국과 결별한 후에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미국의 또 다른 선택은 좀 더 참을성 있게 인내하자는 것이다. 여하간 미국도 한국과의 결별을 위한 마음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시점이다.

저능아 진중권의 미국한 논리에 따르면 백년 전의 카쓰라-태프트 밀약이 미국의 항구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마치 이 말은 19세기 말의 대원군이 쇄국 정책을 썼으니, 21세기의 한국도 쇄국 정책을 쓴다는 주장과 똑같은 말이다. 만일 미국의 한국학에서 한국의 외교 정책은 대원권 시절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그련데, 진중권의 미국학이 지금 그런 소리를 하고 있다. 과연 그들은 언제까지 "카쓰라-태프트 밀약"을 단골 메뉴로 반미 논리를 주장할 것인가? 미국의 한국학은 19세기의 한국과 21세기의 한국은 같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중권 류의 한국 좌파의 미국학에서는 19세기의 미국과 21세기의 미국이 똑같다고 우긴다. 그러기에 미국의 한국학과 한국 좌파의 미국학을 비교하여 이 글에서는 진중권을 저능아라고 부른다.

1865년에 남북전쟁의 막을 내린 미국이 한국과 교역하기 위해 미국이 제너럴 샤먼호라는 상선을 보내었으나 한국이 대동강에서 침몰시켰다. 사실, 이것은 대표적인 사건일 뿐이고, 한국(당시 조선)에 입국 요청을 하려던 미국인 민간인들을 불에 태워 죽인 또 다른 사건들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의 한국학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전혀 기억하지 않는다. 무고한 미국인들을 Korea 라는 나라가 불에 태워죽였다. 그런데, 반한 감정은커녕 목숨을 걸고 조선에 선교사로 가겠다는 미국인들이 줄을 이었으며, 그들이 속속 입국하여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지었으며, 한국인들이 길거리에 버리는 문둥병자들을 집으로 데리고 가 씻어주고 먹여주며 애양원을 지었다. 명문가 딸이 한국에서 선교하다 죽으면 그 부모가 전재산을 기증하여 한국에 종합병원을 지었다. 우리가 근대화가 일본 덕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이렇게 한국인이 미국인들을 태워 죽인 후에 일어난 미국의 한국 선교 운동이었다.

사실 카쓰라-태프트 밀약은 좌파가 주장하는 것과는 내용이 다르다. 필립핀으로서는 중국에 점령당하는 것보다는 스페인 식민지가 되는 것이 나았으며, 스페인 식민지로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는 것보다는 미국 식민지가 되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일본이 필립핀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둔 것이 카쓰라-태프트 밀약이었는데, 이 조약은 훗날 일본이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필립핀을 침략하였을 때 깨졌다. 이 조약의 또 하나의 항목이 러일 전쟁의 원인이 된 한국 지배권이 러일 전쟁 승자에게 있다는 것을 미국이 일본에게 인정하여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조약은 일본이 필립핀을 침략하였을 때 께졌으며, 그래서 오히려 미국이 한국을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미국 역사를 한 페이지도 읽어보지 않고 미국학을 떠드는 진중권을 위해 미국 역사 한 페이지를 여기 서술해 보기로 하자. 진중권 류의 무식한 좌파는 2차세계 대전 이전의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후진국으로, 경제적 약소국으로 분류되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하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유럽 유학을 갔다오지 않은 사람은 지성인 대우를 받지 못하였으며, 유럽에서는 미국을 무식한 상놈의 나라로 취급하였었다. 카우보이의 나라가 미국의 이미지였으며, 유럽에서 죄수들 귀양지로 알려진 나라였으며,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대공황을 겪던 나라였다. 1905년의 미국은 아직 서부 개척 시대의 후진국이었다.

따라서 그 시대는 미국이 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때가 아니라, 유럽의 문명을 미국이 배워오던 때였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에 유럽을 정복한 사회적 진화론이 20세기 초에 미국에 상륙하였다. 유럽 제국주의는 강대국의 약소국 지배를 정당화하는 사회적 진화론에서 나왔다. 이런 사회적 진화론이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여졌던 나라는 유럽 국가들이었으며, 일본도 유럽에서 사회적 진화론을 수입하여 정한론의 논리 체계를 세워나갔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마치 이라크 파병 때 한국 사회에서 찬반 대결이 있었던 것처럼 스페인으로부터 필립핀 식민지를 인수하는 문제를 가지고 미국의 국론이 분열되는 몸살을 앓았다.

필립핀 식민지 인수론 찬성자들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보호해야 할 믜무가 있다는 사회 진화론 논리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미국이 다른 나라를 지배한다는 것은 건국 정신에 위배된다고 하였다. 그들은 청교도들이 아메리카에 이주하였던 것은 다른 민족을 섬기는 민족이 되기 위함이었음을, 그리고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려던 정치 철학도 식민지 독립이었음을 상기시켰다. 이러한 격렬한 논란 끝에 유럽의 사회진화론이 잠깐만 우위에 있었던 시기가 바로 그 시기였다. 그러나, 미국의 독립운동 때 형성되었던 정치철학이 다시 우위를 회복하여 미국의 독자적인 국제정치학을 형성해나갔으니, 1919년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그 예였으며, 2차 대전 후에 전세계의 모든 식민지들을 해방시키는 일에 발벗고 나선 나라가 또한 미국이었다.

이렇듯 오늘날의 미국은 전혀 사회진화론의 패러다임에 지배를 받고 있지 않다. 오히려 유럽의 사회진화론 논리를 무너뜨린 나라가 미국이다. 2차 대전 후에 유럽제국들이 미국의 제의를 받아들여 사회진화론 논리를 포기하고 식민지들을 순순히 해방시킨 것은 미국에서 형성된 국제정치학 논리가 유럽의 논리를 무너뜨렸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미국이 세계 지도국이 된 것은 일차적으로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철학의 문제였다. 그런데 진중권은 도대체 유럽 유학을 어떻게 하였기에 이런 기초적인 사실조차 모른다는 말인가? 유럽에서 사회 진화론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다.

한국인들이 카쓰라-태프트 밀약을 자꾸 떠들면 미국에서는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미국은 미국이 잘못했다고 누누히 말해 왔다. 학자들이 그렇게 말했으며, 정치가들이 그렇게 말했다. 사실, 카쓰라-태프트 밀약이 일본의 을사보호조약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다. 러일 전쟁의 승자의 권한을 국제 사회가 인정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외교전에서마저 일본에 지고 있었던 것이 우리 편에서 그리 잘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해방시킨 미국의 역할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유럽의 사회 진화론 논리가 미국 정치학 논리에서 패배하고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중권 류의 좌파가 백년 전의 미국과 오늘날의 미국 정치 패러다임은 동일하다는 엉터리 미국학 논리를 고집하는 것은 스스로 저능아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미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의 연설 관련기사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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