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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라태프트조약에 대한 진중권의 무지
무식 폭로한 진중권의 가쓰라태프트 조약 발언
진중권은 아주 후진적인 말장난을 하고 있다. 진중권을 보면 구한말에 관념론적 말장난을 일삼던 유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도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지식은 과학과 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지식, 일본의 정한론 논리를 막아내지 못하던 지식이었다. 진중권은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적, 합리적, 객관적 사고방식을 부정한다. 그러나, 모두가 진중권처럼 비과학적, 비객관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말장난을 하면 한국 문명을 발전할 수 없었으며 한국은 언제까지나 가난한 농업 사회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며칠전(2005년 3월) 지만원 박사와의 CBS 토론에서 진중권은 "오히려 일본과의 계약의 당사자는 미국이었다. 가쓰라태프트 조약. 그럴듯하게 일본이 식민지 안했더라면 미국이 했을 것이다, 이건 그럴듯하게라도 느껴진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진중권은 마치 미국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는데 관심이 있었던 듯 말하기에 무식한 진중권을 위해 가쓰라태프트 조약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보기로 하자.

가쓰라태프트 조약이란 러일전쟁 직후 1905년 7월 29일, 당시 일본 수상 가쓰라 다로[桂太郞(계태랑)]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특사 W.H. 태프트 육군장관 사이에 이루어진 밀약을 일컫는다. 이 조약의 배경은 이러하다. 러시아가 한반도를 침략하기 위해 먼저 만주를 정복하였던 1904년에 러일전쟁이 발발하였다. 그때 일본군은 한국도로를 통해 만주로 진군하였었는데, 1894년 동학란 때 이미 조선 조정이 일본군 파병을 요청하였던 때라 조선 사람들은 일본군이 한반도를 통과하여 만주로 진군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오히려 안중근 등 지식인 애국지사들은 러일전쟁 승자가 일본이기를 바라던 터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인의 모습인 영국인 종군기자를 통해 서구 세계에 알려지는데, 그 기자는 외국군이 자국 영토를 통과하여도 아무런 항의나 저항을 하지 않는 민족이라고 기사에 기록하였다. 그리고, 본래 러일전쟁이 러시아제국 팽창주의를 위한 전쟁이었었기에 러일전쟁 이후의 조선의 운명은 러일전쟁 전승국 일본의 손에 달려 있게 되었다. 바로 그때 미국에서는 필립핀을 스페인을 대신하여 미국이 식민지로 삼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를 가지고 국론이 양분되어 있던 때였다. 유럽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은 일부 지식인들이 미국도 후진국을 보살필 의미가 있다면서 스페인을 대신하여 미국이 필립핀을 점유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이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을 상기시키는 민족자결주의론자들은 필립핀을 식민지로 삼음의 비도덕성을 비판하였다. 그런데, 미국 역사에서 딱 한번 사회진화론, 즉, 제국주의론자들이 이겼던 때가 1905년이었다. 그러나 그후 1919년에 미국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를 선포하고, 그 정신을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과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에서 재확인하여 약소국들의 민족자결을 실현시키는 선봉에 서는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1905년에 정치 여론이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필립핀 식미지 통치를 승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을 때 당시 미 대통령은 조선 문제에 대하여 갈등에 직면한다. 그러나 조선인들이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항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였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국무장관에게 이런 메모를 보낸다: "만약 어느 나라가 스스로 독립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그들이 못하는 것을 우리가 대신해서 해 주어야 할 책임은 없다." 즉, 한국인에게 독립을 유지하려는 의사가 없다면 미국이 일본을 말려야 할 책임은 없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미국은 똑같은 말을 한다. "만약 한국인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의지가 없다면 미국이 그들의 자유와 생명을 위해 또 다시 대신해서 피를 훌려주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하여 파견된 미 육군장관 태프트는 알본 수상 가쓰라와 회담하고 비밀 각서(覺書)를 교환하고 다음과 같은 밀약을 하였다: 1) 일본은 필리핀에 대하여 하등의 침략적 의도를 품지 않고 미국의 지배를 승인할 것, 2) 극동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미·영·일 3국은 실질적으로 동맹관계를 확립할 것, 3) 러·일전쟁의 원인이 된 한국은 일본이 지배할 것을 승인할 것.

그럼 여기서 무식힌 픽션 소설가 진중권의 억지 주장을 다시 들어보자: <오히려 일본과의 계약의 당사자는 미국이었다. 가쓰라태프트조약. 그럴듯하게 일본이 식민지 안했더라면 미국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의 계약의 당사자가 미국이었던 것이 아니라, 러일전쟁의 필연이 미국과 영국 등의 강대국들이 일본이 전승국임을 인정해 주는 것이었다. 본래 러시아가 러일전쟁을 피하는 조건으로 일본에 한반도를 삼팔선으로 분할하여 이북을 러시아가 병탄할 것을 제안하였었다. 그런데, 러일전쟁 전승국이 일본이었기에 러일전쟁에 뒤따른 것이 가쓰라태프트 조약이었는데 진중권은 이것을 거꾸로 이해하고 있다.

정치외교학에 무지한 진중권을 위해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쉽게 풀이하면 일본이 영·일동맹(英日同盟)의 갱신으로 한국에서 얻은 지위를 미국으로 하여금 보장케 하는 대신에 미국의 필리핀 점유를 묵인한다는 교환조건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일본 편에서는 러일전쟁 전승국으로서 한반도에 이해관계가 있었던 것이요, 미국 편에서는 미국과 스페인 전쟁의 전승국으로서 필립핀 열도에 이해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만약 러시아가 러일전쟁의 승자였다면 미국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을 것이라는 진중권식 가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승조 교수가 말하는 사회과학적 사실을 부인하고 자기가 쓴 픽션소설만 옳다고 주장하는데 바로 진중권의 논리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런 진중권식 좌파 논리의 맹점은 일본이 왜 그토록 독도를 탐내는지 알지 못한다는데 있다. 진중권이 픽션 소설과 달리 20세기 초의 조선은 미국이 식민지로 탐낼 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20세기 초에 섬들의 나라 필립핀에서 미국이 원하는 것은 해양 기지였다. 러시아가 원하는 것은 부동항이었다. 그리고 일본이 원하는 것은 중국 진출을 위한 철로였다. 대부분의 식민지가 자원이 풍부한 나라였던데 비해 조선은 인구만 많고 자원이 없는 나라였다. 그러나 20세기 초와 달리 지금 일본은 대륙 진출을 위해 한국 철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양 거점으로서의 독도에는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다. 픽션 소설로 구성된 좌파의 사관에서는 바로 이 점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김대중과 노무현이 신어업협정으로 독도를 팽개쳐 버린 것이다.

그리고 진중권 류의 좌파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반미 선동거리로 이용하지만, 사실 가쓰라-태프트 조약이 우리 민족에 주는 교훈이 있다. 지금 좌파가 반일, 반미, 반(反)외국, 반(反)국제사회를 주장하듯이 폐쇄적 국수주의에 있어 노빠들고 좌파들의 대선배였던 구한만 정치인들이 쇄국정책을 고집하였다. 무엇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던가? 일본은 미국이 필립핀에서 스페인의 식민지를 물려받는 것에 대해, 그리고 미국은 일본이 러일전쟁 승전국 권리를 한반도에서 주장하는 것에 대해 국제 외교무대에서 여론화시키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일본이 이렇게 미영일 삼국 동맹을 맺었을 때 우리 선조들의 외교의 시계는 몇시였던가? 그후 40년이 지나 미국의 패전국이었던 일본은 가쓰라-태프트 밀약 100주년을 맞이하여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있는데, 진중권류의 반미주의자들이 한미상호방위조약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지금 한국 외교의 시계는 몇시인가? 바로 이것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우리 민족에게 주는 교훈, 진중권도 만일 그의 가슴 속에 조국이 있고 조국에 대한 사랑이 있거든 명심하여야 할 교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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