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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노무현 정치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민주주의 철학이 없는 한국인들은 민주주의가 거꾸로가게 하는 것이 민주화운동이라고 우기는 경향이 있다. 그들, 무식하게 우기는 족속이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로 매도하는 유일한 근거는 그가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국민에게서 대통령을 직접 선거할 권리를 빼앗아가는 것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불렀다. (박정희가 국민에게 직선제 선거권을 되찾아줌으로 민주주의 시계가 제자리에 오게 하는데 3년이 걸렸음을 상기해 보라.) 그들은 최규하 대통령의 직선제 개헌을 반대하는 것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불렀다.

김대중은 쿠데타로 집권하겠다며 직선제 개헌을 반대하였던 바, 1980년대 초부터 5월 중순까지의 시위는 직선제 개헌을 반대하기 위해 최규하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였으며, 화염병과 돌로 서민 경제가 어렵게 만들었으며, 순경들을 무참히 죽였으며, 마침내 5.18 광주사태로 폭발하였다. (광주사태 앞에서 두 손 들고 직선제 개헌을 반대한 최규하 대통령이 시위대 구호가 외치던 대로 하야하시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다시 국민에게 직선제 선거권을 되찾아줌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시계가 제자리에 오게 하는데 무려 7년이나 걸렸음을 상기해 보라.)

노무현이 박정희 죽이기를 시도하였을 때 그것은 박정희의 과학 입국 정책을 부정하겠다는 꼼수였다. 일제 시대 때 총독부 정책이 조선인은 과학을 공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요, 남한에는 공장을 짓지 않았으므로 해방 후 한국은 과학 불모지대였으며, 더구나 남한의 산업환경은 세계에서 가장 열악하였다. 대개 후진국들의 특징이 무진장한 지하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비해 한국은 지하자원마저 없는 나라였다. 그런데, 박정희의 과학입국정책이 짧은 기간 내에 한국의 과학 수준을 이렇게 거의 선진국과 어깨를 나라히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입국정책의 한 예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설립이었다. 1966년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존슨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께 개인적으로 무슨 선물을 원하시는지 묻자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설립을 요구하셨다. 현재 김대중이 소지한 가짜 박사 학위가 10개가 훨씬 넘는 것으로 보아 김대중이라면 명예박사학위를 요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를 요구하셨다. 그리고 지금은 웬만한 개인 연구소에도 있는 해외 과학기술 정보가 한국에 전무하였던 시대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한국 과학기술을, 더 나아가 한국 산업을 급격히 발전시키는 모체 역활을 했었다.

노무현이 박정희 죽이기를 하였을 때 그것은 박정희의 과학입국정책을 부정하겠다는 꼼수였다. 그런데, 요 며칠 전(2005년 5월)에 노무현이 황우석 교수를 극비 방문하였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노무현이 무엇을 위해 황우석 교수를 극비 방문하였을까? 박정희 대통령은 과학입국정책을 국민에게 당당히 공표하셨다. 그런데, 노무현은 왜 극비 방문하였을까? 물론 무지한 노빠들은 노무현의 극비 방문이 민주적 과학입국정책이라고 우기겠지만 국민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일은 아닌듯 싶다. 그리고 노무현의 극비 방문과 때를 같이 하여 정부는 황우석 교수에게 수백 억원을 추가 지원하겠다고 큰 소리로 발표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설립은 무일푼으로 대미 외교의 승리로서 세워진 것이었지만,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연구는 추가지원만 수백 억원이라 하니 그 지원 규모가 실로 엄청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설립 없이 황우석 교수의 등장은 불가능하였다. 그 시절 공대를 다녔던 분들은 그 당시 공대 강의 내용이 중고등학교 과학 참고서 내용과 별반 다를 바 없었음을 회고한다. 그런 한국에서 과학도들에게 아주 빠른 속도로 해외의 최신 과학기술정보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입국정책은 독재가 아니었다, 비록 김대중 등 몇몇 운동권의 반대가 있기 했었으나 국민의 합의를 끌어낸 민주적 정책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황우석 교수에게 베푸는 특혜에는 독재성이 있어 보인다. 그 막대한 지원을 국민의 세금으로 하면서 국회에서 예산 심의를 거치지 않고 노무현 정권 맘대로 결정한다. 외국에서는 국민의 찬반 논쟁으로 국민이 반대하며, 국가도 법률로 금지시키는 줄기세포 연구를 한국에서는 노무현 정권이 독단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민의를 존중하는 부시 대통령이 앞장서서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고 한국에서는 노무현이 선두에 서서 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한다.

한국에서는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과학 연구라며 지원하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이런 류의 연구는 비과화적 연구이기에 과학자들이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다. 동물 복제 성공으로 생명의 신비가 풀린 것은 아니다. 복제된 동물들이 단명하는 이유는 동물 복제가 유전자에 이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 복제된 세포가 몇 대 후에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당대에 과학 실험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과학 실험이 불가능한 영역은 과학의 연구 대상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과학자도 의사도 아닌 황우석 교수가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연구를 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의사 황우석 교수가 인간의 병을, 그것도 더구나 불치의 병을 치유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서 불치의 병에 대한 한국인의 경험을 박정희 시대와 비교해 보자.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혁명은 그 본격적인 결실이 후대에 나타나는 것이었기에 1960년~1970년대의 한국은 여전히 가난한 나라였으며, 병원도 많지 않고 의료보험이라는 것도 없었던 때였다. 그러나 그 시대의 한국인들은 불치의 병에 걸리면 기도했으며, 기도로 많은 불치의 병이 치유되기도 했다. 불치의 병이 있는 곳에 믿음의 자리가 있었으며, 투병 중에 주님을 가까이 하는 영성이 있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 시대 한국인들은 불치의 병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황우석 교수에게 가져가려 하고 있다.

진정한 과학도들에게 줄기세포 연구는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연구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과학만능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과학과 과학만능주의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과학자도 의사도 아닌 수의사 황우석 교수가 인간의 불치의 병 문제 해결사를 자처하였을 때 여기에 과학만능주의로 국민을 속이는 그 무엇이 있다. 그의 과학만능주의가 국민에게서 신앙을 도적질하고 있다. 사실, 수많은 사회적, 육체적 질병이 메마른 영성에서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황우석 교수는 거꾸로가는 치유를 시도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아직까지 인간의 줄기새포 복제를 금지하는 이유는 인간은 동물이 아니라는 윤리 때문이다. 그런데 황우석 교수의 불치의 병 문제 해결 논리는 인간은 동물이라는 세계관에서 시작한다. 모든 수의사가 인간을 동물과 동일시하지는 않지만, 황우석 교수의 인간론은 인간과 동물을 동일시하는 것인 듯하다. 그래서 그의 불치의 병 치유 연구는 전적으로 동물 실험에 의존한다. 한 세대 전의 한국인들은 인간은 영적 존재라는 진리에서 병 문제 해결을 추구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인간과 동물을 동일선상에 놓는 세계관이 팽배하고 있다.

사실, 선진국에서 줄기세포 연구에는 윤리적, 법적 문제가 있다. 여기에 인간의 생명이 언제 시작되느냐의 문제가 있다. 인간의 생명은 출산시에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태아 역시 생명체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 배아를 복제한 다음에 폐기 처분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는 것이다. 유독, 한국에서만 그런 윤리가 없는 것인가? 평화로웠던 박정희 시대와 달리 지금 많은 사람들이 폭력 범죄로 목숨을 잃거나 불구자가 되고 있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인 질병은 인간성이 메마른 사회적 질병이다. 그렇다면, 황우석 교수식의 인간론을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노무현 정권의 독재가 아닌지 우리는 물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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