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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좌익의 후진적 진보 컴플렉스

후진국의 진보 컴플렉스와 한국 좌익의 진보병  

   한국과 인도는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다.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되던 바로 그해 1945년에 인도 역시 영국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60년대에 두 나라가 나란히 세계에서 GNP가 가장 낮은 나라였다는 사실도 닮은꼴이다. 그러나 두드러지게 다른점은 퇴보를 진보로 여기는 진보병에 걸린 한국 좌익의 70년 대선배가 인도에 있다는 사실이다.

    인도는 비록 후진국이지만 인도의 국민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골은 1913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이 위대한 동양의 시인이 일찌기 우리나라를 가리켜 세계를 비추는 등불이라는 말을 하여 일제 시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긍지를 주었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 좌익이라는 별종 집단이 있는 것처럼 그 당시 인도의 사상계에도 그늘이 있었다. 즉, 퇴보를 진보라고 생각하는 진보병 환자들이 1930년대에 인도에 있었으며, 한국 좌익은 그 영향을 받았다. 이렇듯 인도는 우리나라에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을 모두 준 나라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후진국의 진보 컴플렉스에 걸린 증상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실로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후대에 후진국에 퍼져있는 진보사상은 본래 19세기의 유럽에서 태동하였다. 진보 사상의 선구자로 꼽히는 이들 중 하나가 바로 헤겔(G. W. F. Hegel)인바, 그는 대자연의 법칙에 따라 역사는 정(正), 반(反), 합(合)으로 나아간다고 가르쳤다. 즉, 그는 인간의 이성은 정에서 반을 거쳐 합으로 진보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의 철학은 후진국의 사상계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예를 들어, 당시 유럽에서 가장 후진국이던 러시아에서 헤겔의 사상은 신비주의적 민족주의의 밑거름이 되었다. 헤겔의 변증법은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였던바, 그 공산주의 이론을 자국의 정치에 접목시킨 나라들도 러시아와 그 주변 후진국들이었다.

    그러나 진보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다윈의 진화론이었다. 다윈은 적자 생존과 약자 도태의 과정을 거쳐 생물은 진화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다윈이 생물계의 법칙이라고 주장한 것을 어떤이들이 인간 사회에 적용한데서 진보 사상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좌익이 스스로 진보 진영임을 자처할 때 그것은 21세기에 19세기 사상으로 퇴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퇴보는 진보가 아니다.

    오늘날 후진국에 퍼져 있는 이 진보병의 뿌리는 무엇보다도 원숭이가 자기 조상이라고 여기는 신념이다. 그들은 자기네 선조는 원숭이요 첫 조상은 아메바라는 단세포 생물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들은 사람의 신분을 원숭이와 아메바 수준으로 격하시켰다. 그리고 그것은 진보가 아니다. 만일 원숭이와 아메바가 사람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진보라면 진정한 진보주의자들은 원숭이와 아메바들이다. 참으로 그들의 주장이 과학적 법칙일진대 원숭이와 아메바는 사람으로 진화할 미래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더 이상 진화할 수 없다. 유전공학은 사람의 유전자의 변형은 기형 아니면 멸종을 의미함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기형이나 멸종도 진보가 아니다.

    그리고 후진국의 진보병 환자들은 퇴보를 진보라고 주장함으로써 사회학적, 경제적 및 정치적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다. 좌익 논리에서 근면한 흥부는 타도할 부르주아이다. 그들은 흥부가 땀흘려 일한 것을 놀부들이 빼앗아 나누어가지는 사회가 유토피아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놀부를 위하여 완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진보주의자들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가 선진국이 되는가? 흥부가 많은 나라이다. 좌익은 놀부들이 날마다 파업하면 선진국이 되는 줄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흥부의 근면의 단계를 생략하고 놀부의 이상향을 외치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얼마든지 국력이 뻗어나가며 발전할 수 있는 나라인데, 진보병 환자들인 좌익이 근자에 온갖 퇴보적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 모두는 진보를 원한다. 그러나 진보병 환자들인 좌익이 몰고가는 퇴보는 우리가 원하는 진보가 아니다. 좌익의 논리에서 완전한 사회인 놀부의 유토피아는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 사회가 아니다. 가장 선진국인 미국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다. 그리고 미국이라도 일하기를 멈출 때 퇴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물며 개발 도상국 국민들이 놀부의 유토피아 사상에 빠져 있을 때 그 퇴보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사 좌익이 원하는 놀부의 유토피아라는 것이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런 사회는 불가능하다. 후진국 수준으로 일하고 선진국 수준으로 생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착각에 빠진 자들을 우리는 진보병 환자 혹은 좌익이라고 부른다.

    좌익 논리의 문제점은 흥부와 놀부의 소득의 격차를 사회적 문제로 보는 경향이다. 물론 우리 사회가 놀부를 위한 이상향이 아니라는 것이 사회적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가난한 흥부와 게으른 졸부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안다. 우리 사회는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완전해지는 것이 가능할까?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죽음이 그 종착역인 사람에게 완전한 사회는 없다. 레닌도 스탈린도 김일성도 죽었다. 설사 그들이 놀부들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는데 성공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완전한 사회가 건설될 수 있는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는, 그리고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완전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다.

    놀부의 유토피아 환상이 성공한 나라는 없다. 북한은 놀부의 유토피아 환상의 허구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북한의 수용소가 무엇인가? 가장 힘들게 일하고 가장 적게 댓가를 방는 곳이다. 남한 좌익이 이 단순 명료한 사실을 모를리 없음에도 왜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한 통속이 되어버렸는가? 그것은 남한 좌익 이론도 북한 공산주의 사상도 그 사상적 족보가 칼 마르크스의 유물론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리로 마르크스의 계급 투쟁 이론은 다윈의 진화론의 산물이다. 그래서 공산주의도 좌익의 진보병도 무신론주의와 통한다. 그들은 사람의 영혼과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부정한다. 따라서 그들의 진보 사상의 귀결은 사회적퇴보이며, 개인적으로 삶의 의미의 상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후진국 좌익의 진보 컴플렉스를 진보라고 불러서는 아니되는 이유이다.

1965년 독일에 방문하신 박정희 대통령
(1965년 독일에 방문하신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 수상의 영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건실한 발전이지 진보 공론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흥부의 철학으로 우리나라를 크게 발전시키셨다..
그런데 정치와 경제에 문외한이며 놀부 철학을 가진 좌익이.
엉터리 진보 공론으로 한국의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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