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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씨 추모 열기와 독도 문제

 

△ 고 이수현씨의 용기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표상으로 여전히 일본인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2004년1월2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합동 3주기 추모행사. (사진/ 연합)

 

일본의 한류 열기는 하루 아침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혹자는 한국 가수들이 노래를 잘 부르기에, 배용준이 연기를 잘하기에, 그리고 원빈이 꽃미남이기에 일본에 한류 열풍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먼저 2001년에 고 이수현씨 추모 열풍이 일본 열도를 휩쓸었으며, 그때부터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마음이 열려 한국 연예인들이 일본 사회에서 환영받고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소수의 나쁜 일본인을 다수의 일본인과 분리시키는 것이 독도 문제를 위한 현명한 대처이겠기에 먼저 일본 사회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자.

일본인들은 지식 전달의 천재들이다. 실로 그 어떤 지식과 사상도 일본에서는 빨리 전달된다. 높은 교육 수준과, 엄청난 양의 출판물, 그리고 어떤 외국 서적도 가장 빠르게 번역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일본은 세계의 지식의 중심지 중 하니가 되었다. 기독교는 포르트갈 출신 유럽인들이 일본 서쪽 섬 지방인 큐슈(九州)에 처음 발을 디뎠던 1542년에 처음 전래되었다. 이처럼 일본은 기독교가 일찍이 전래된 만큼 일찍 근대화 되었지만 오늘날 일본에는 약 일이백만의 기독교 신자들이 있는데, 이는 일본 인구의 일 퍼센트에 불과한 숫자이다.

선진 문명국으로 유명한 일본의 불가사의는 고대의 미신 풍속과 현대의 과학적 합리론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 현대 과학 세계의 한 가운데서 많은 집들이 신도(神道)의 신주와 불교의 불상을 모셔두고 있다. 팔만 신이 있다고 믿는 다신교적 신도는 이 과학 시대에 여전히 일본 문화의 뿌리를 형성하는 미신적 민속 종교이다. 일본에서 결혼식 주례는 신도가 도맡아 하고, 일본의 90퍼센트의 장례식은 불교 식으로 치러진다. 신도는 현대 일본에서 여전히 집단 동일성을 위해 중요하다. 후삼국 시대 때 마진 국의 황제 궁예가 국론의 단합을 위하여 법회를 자주 열었던 것처럼 일제 시대 때 일본이 잔혹하리 만치 우리 민족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하였던 것도 일본 정신에 우리 민족을 예속시키려는 저의에서였다. 이처럼 현대(現代) 속에 고대(古代)가 공존하며, 기계 문명 속에 미신 신앙이 도사리고 있는 일본의 대중 문화에서 소위 포크몬(Pokmon)이라는 영화가 등장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회학적 요소는 일본은 집단 소속을 중요시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들은 집단으로서 존재하며, 소속 집단에 대한 충직(忠直)이 일본 사회에서의 하나의 가치관이다. 일본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집단 소속감을 상실함을 무릅써야 함을 의미하는 사회이다. 그런데, 이런 일본인 사회의 특질을 우리가 독도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에 적용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일본 텔레비전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허수아비와 일장기를 태우는 모습이 여과 없이 장시간 방영되고 있다. 한류 붐을 통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한껏 고조된 보통의 일본 사람들은 의아한 눈초리와 경계의 눈초리로 텔레비전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것만으로도 독도 문제를 일본 전국민의 문제로 확대시키고자 했던 시마네현 몇몇 사람들의 목표가 달성됐다는 사실이다.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면 시마네현 몇몇 사람들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을, 일본 전 매스컴이 주목하고 일본의 모든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사안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면, 고 이수현씨의 고귀한 희생이 보여준 일본인을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은 무엇인가? 일본인들은 한국인에 비하여 덜 종교적인 국민으로서 대체적으로 인식되어 왔었다. 그러나 최근에 한 한국 청년의 의로운 죽음 앞에서 일본과 한국이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일본인의 도덕성이--더 나아가 그들의 종교적 관심사가--새로이 발견되고 있다. 한 일본인을 구하려다 죽은 한 한국인이 일본과 한국 양국에서 영웅이 되었다. 26세의 한국 유학생 이수현(李秀賢) 씨가 한 일본인을 구하려다 2001년 1월 26일에 열차에 치었다.

그리고 월요일(1월 28일)에 동경에서 수많은 일본의 명사들이 일본어 학교에 차려진 고 이 수현 씨 빈소에 줄을 이었다. 이수현 씨의 장례식에 참석한 천명이나 되는 조객들 중에는 모리 요시로(林喜朗) 일본 총리와 일본 외상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문부 과학상, 가토 고이치(加藤絃一) 자민당 전간사장도 있었다. 모리 총리는 이씨 영정 앞에 분향한 후 이씨 부모의 손을 잡으며 "아드님이 일본 청년들에게 영웅적인 삶의 귀감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였다. 한편 가가와 히데토시(加川英俊) 도쿄 신주쿠(新宿) 경찰서장은 이날 오전 빈소를 방문하여 경시 총감 감사장과 메달을 이씨 부모에게 수여했으며, 오기지카케(扇千景) 국토 교통상, 내각 관방 산하 '사단법인 일본선행회'도 이씨의 희생 정신을 기리는 감사장을 전달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조선총독부 시대의 기억과 제2차 대전 중의 일제의 만행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을 인정미 있는 사람들로 여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의 땅에서 의로운 일을 위해 자기 목숨을 잃은 한 한국 대학생 추모 열정이 온 일본열도를 휩쓰는 것을 본다는 것은 일본인의 새로운 모습 발견이 아닐 수 없다.

한 외국 학생이 죽었다. 그렇다, 사람은 죽는다. 그가 전철역에서 죽었다. 그렇다, 이런 사고는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4월과 9월 사이에만 스물 두 명이 철로에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26세의 한국 대학생이 죽기 전까지는 신문에 대서 특필 되지 않았었다. 일본 언론들이 이수현 씨의 숭고한 희생 관련 소식들을 연일 톱기사로 다루었다. 월요일 아사히(朝日) 석간은 "일본과 한국이 같은 눈물을 나누다"라는 표제의 기사를 대서 특필하였다. 수많은 일본인들이 수주 째 계속해서 이 수현 씨 가족을 위해 조의금을 보내오고 있다. 이 열풍이 스포츠계에도 번져 이 수현 씨 추모 한일 친선 경기, 이수현 씨 추모 대회 등이 줄줄이 열리는가 하면 동일본여객철도는 사고 현장에 추모비를 세운다고 한다. 이것은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비극적 사고 소식에 접한 영국인들이 보여주었던 추모 열풍을 가히 상기케 하는 것이다. 그럴진대 우리는 이 사건의 그 무엇이 그토록 독특하기에 일본열도에서 그토록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그토록 감동의 샘이 터지게 하였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의로운 죽음--이타(利他)적인 귀감--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기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일본인을 구조하기 위해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외국인이 있었다. 그 정신을 기리며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는 "젊은이들이 남을 도울 용기를 가진다는 것은 좋은 교훈"이라고 말하였다. 이씨에게 조의를 표하는 수많은 일본인들이 그가 그들에게 남긴 그 교훈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 지를 표현한다. "이 사회에 이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 있다니 참으로 감동되오"라고 한 노인이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말하였다.

고려대 무역학과 졸업 학기에 휴학하고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이현수 씨가 막 인터넷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도쿄(東京)도 신주쿠 구 JR 야마노테센(山手線) 신오쿠보(新大久保) 역에 들어선 것은 오후 7시가 좀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사고 현장은 신주쿠 방면 뒤쪽에서 33m를 지나 50m 지점에 이르는 17m 마의 플랫폼. 옆 철로와의 사이엔 높이 1m짜리 철책이 있고, 플랫폼 발 밑의 대피공간조차 막혀 있던 곳이었다.

전차들이 수분마다 휙 소리를 내며 오가는 사이 이 씨는 다음 전차를 기다리며 휴대폰으로 기숙사 친구들에게 자신이 곧 귀가함을 알렸다. 바로 그때 건너편 플랫폼에서 술을 마시던 일본인 사카모토 세이코 씨가 발이 미끄러져 철로에 떨어진 것을 본 이씨는 바로 몸을 날려 철로에 뛰어내렸다. 그러나 함께 뛰어내린 일본인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씨와 힘을 합해 사카모토 씨를 일으켜 세우고 넉 자 높이의 플랫폼으로 들어올리려다 진입하는 전동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세 분 모두 치었다.

비록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서 이수현씨는 이제 사라졌어도 여전히 해마다 이수현씨 추모행사를 하는 일본인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2005년 부활절에 이런 질문을 품어본다. 만일 한 사람이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고 남의 생명을 구하고자 했다는 소식이 하루만에 전 일본열도에 전해져 그들의 가슴을 찌를 수 있었다면 어째서 기독교가 일본에 전래된 지 사오 백년이나 되어도 여태껏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복음을 전해 들은 일본인의 수가 그토록 적은 것일까? 그러나 이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고 이수현씨가 고귀한 희생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은 우정의 가교를 헛되게 하는 것은 결코 애국적 행위일 수 없다.

지난해(2004년) 1월에 있었던 이수현 추모 3주기 행사에서 일본의 경제평론가 다케우치 히로시가 했던 추모사를 일본인들은 지금 기억하고 있다. 그는 “고 이수현씨의 행동이 일본 사회에 준 충격은 무엇인가”라고 물은 뒤, “그것은 그의 행동이 일본 사회와 일본인을 반성하게 했다는 점”이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반성’이다. 이수현은 일본인을 ‘반성’하게 했다. 해방 이후 무수히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정말이지 일본인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든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진중권과 한홍구 등 미련한 한국 좌파의 문제는 몇몇 극소수의 나쁜 일본인들만 보고 여태껏 이수현씨를 추모하며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 일본인들, 우리 편이 될 수 있는 일본인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천치 밥통들은 온갖 요란을 떨며 독도 문제를 일본과 한국의 대결 문제로 확대시키고 있다. 독도는 가만있으면 우리 땅인데 왜 세계의 뉴스거리거 되게 하여 분쟁지역을 만드는가? 한국인이 일장기를 태우는 모습이 세계 뉴스가 되게 하려는 것이 일본 극우가 파놓은 함정인 줄을 모르는가? 몇몇 나쁜 일본인들 혼자 까불게 놔두면 전혀 일본 여론의 관심을 끌지 못할 일이다. 그럼에도 진중권과 한홍구 등 미련한 좌파들이 일본인의 집단 심리를 부추겨 독도 문제를 일본과 한국의 대결 구도로 비화시켜 놓았으니, 이 어찌 고 이수현씨의 거룩한 희생을 헛되게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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