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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하리수와 정치외교학자 한승조
근래에 비상식이 상식을 뒤업은 일들이 두번 일어났는데, 하나는 연예계에서 일어났고, 다른 하나는 학계에서 일어났다. 2001년 여름 여자보다 예쁜 남자 하리수의 화려한 등장도 한국인의 상식을 뒤엎었던 일이요, 2002년 봄 정치외교학자 한승조 교수의 등장도 한국인의 상식을 뒤엎었던 일이었다.

한류 열풍의 원조는 하리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하리수 이전에 아시에에서 한국인 연예인들의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었다. 이소룡 등 중국인계 스타들이 한국에서 인기였지, 한국인 연예인들이 아시아에서 관심을 끈 적은 없었다. 그런데, 하리수의 미모가 아시아 각국 신문들에 대서 특필되면서 한류 열풍이 물꼬가 트기 시작하였다.

1990년 대 초만 해도 트랜스젠더가 한국 사회에서 인기 연예인이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 형이라 불리면서 누나라 불리는 사람이, 아저씨라 불리면서 언니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여기 남자로도 여자로도 불리면서 다시는 남자로 되돌아갈 수 없는 사람, 그리고 영영 여자의 생리를 갖출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남자는 전형적인 사내 대장부 상과 거리가 멀다. 트랜스젠더 하리수는 여자보다 더 요염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리수 열풍의 불가사의는 그에게 여성 팬이 많았다는 사실이었으며, 여인이 된 그를 사랑의 대상으로 품는 여인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근육질의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Christopher Reeve)가 촬영 중의 사고로 전신불수 환자가 되면서 슈퍼맨의 신화는 서양에서 깨어졌으며, 레슬링 선수 김일이 한국 TV 브라운관을 지배하였던 시대도 지났다. 이렇듯,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구별이 점점 엷어지는 속칭 유니섹스 문화가 현 시대의 추세임을 감안하더라도 하리수의 그 무엇이 여성팬들을 끄는지는 실로 장안의 화젯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 남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 여자가 된, 그리고 여자가 됨으로써 여자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 뭇 여성들이 자기들보다 더 여자다운 몸매를 가졌다며 그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여자보다도 더 요염해 보이는 그가 춤을 출 때는 비단결 같은 긴 머리카락과 날씬한 허리가 한데 어우러져 매우 리드미컬한 동작을 연출해 낸다. 아! 우리가 일찍이 어느 여인에게서 그런 머릿결을 볼 수 있었던가! 그리고 하리수의 눈에는 사랑의 관계로 초대하는 듯한 유혹의 빛이 있어 보였다.

하리수는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였다. 여자들이 그렇다고 말한다. 샘이 많은 여성의 이상한 심리는 다이애너 황태자비와 하리수의 미모에 대하여는 시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티하리수도 하리수의 미모에 대하여는 반박을 못한다. 혹자는 하리수가 성형미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선풍기 아줌마는 성형미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고운 피부와 여자보다 섬세한 몸매의 선은 성형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여자옷 패션 모델로도 하리수는 여자들을 뺨친다. 그는 여장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남자였다. 그러나 타고난 성을 제멋대로 바꿀 수 있는가? 그럼에도 성전환자가 인기 연예인이 된 것은 상식을 뒤엎은 일이었다. 그것도 홍석천이 동성연애자라는 이유로 출연을 금지시켰던 방송국에서 성전환자 하리수를, 그것도 동일한 시기에 하리수를 화려하게 등장시킨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뽀뽀뽀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였던 홍석천의 경우 2000년 9월 그가 동성연애자임을 밝히자마자 그의 커밍아웃에 대한 여론은 따가웠고 방송계는 즉각적으로 그의 출연을 정지시켰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여론의 지탄을 못 이긴 홍석천 씨가 연예계 무대 뒤로 사라지자마자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가 등장하였는데 홍 씨에게 적용되었던 잣대가 하리수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었으니 앞다투어 홍석천의 출연을 정지시켰던 방송계에서 앞다투어 하리수를 출연시켰던 것이다. 무려 오 년을 연예계에서 기반을 쌓고도 단지 동성연애자라는 이유로 한 연예인이 하루아침에 설자리를 잃은 그때에 같은 성적소수자인 다른 한 연예인은 하루아침에 최고인기스타로 데뷔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그 무엇이 하리수와 홍석천 두 사람의 차이점이었던가? 어려서부터 사내아이 놀이보다는 계집아이 놀이를 즐겼던 것도, 남자로 태어났으면서도 여자가 아니라 남자와 애정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는 것도 그 둘은 같다. 그러나 똑같은 성적 소수자인 그 둘을 사회가 바라보는 잣대는 너무도 달랐다. 홍석천의 커밍아웃에는 완강하게 저항하던 여론이 얼굴이 예쁜 하리수가 등장하자 이번에는 성적소수자 권익은 보호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사실 그 차이점은 관점의 차이점이었다. 미모지상주의의 편견이 홍석천을 차별하고 하리수를 편애하였다. 홍석천이 트랜스젠더인 것은 교육상 나쁘다면서 하리수는 출신 고교를 빛낸 선배라고 한다.

그런데 미모지상주의가 트랜스젠더 하리수를 연예계 1번지로 화려하게 등장시킨 것도 한국인의 상식을 깬 일이었듯이, 무식한 사람들이 정치외교학자 한승조 교수를 학계에서 퇴장시킨 것도 한국인의 상식을 깬 일이었다. 문제의 발다은 한승조 교수가 지난 3월경(2005년) 일본의 모 신문에 기고한 글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전화위복"이란 그 글의 주제였다. 그 글이 일본어로 번역되었다가 다시 한국어로 번역되었을 때 노빠들은 그 글의 앞뒤를 다 잘라버리고 한승조 교수를 공격하였다. 일본인이 읽었을 때 그 글은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것은 한국인의 편에서는 전화위복의 기회, 즉 한일합방의 화를 해방과 독립의 복으로 바꾸는 기회였다는 글이었다.

그런데, 무식한 노빠들이 그 글의 앞뒤를 다 잘라버리고 한승조 교수를 매국노로 매도하여 학계와 퇴장시키고, 사회에서 퇴출시켰다. 트랜스젠더 홍석천에 대한 사회의 비판적 여론은 그 시대의 상식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트랜스젠더 하리수가 연예계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은 비상식이 상식을 깬 일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심하게 비상식이 상식을 깨버린 사건이 무식한 사람들이 한승조 교수를 퇴출시킨 사건이었다.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것이 우리 민족에 복이었느냐 아니었느냐는 정치외교학자의 전문가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그는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이 있었기에 20세기 전반기의 우리 민족의 역사는 전화위복의 역사였다고 말하였다. 그러면 노빠들은 무식해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모르면 한승조 교수에게 배워야 옳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승조 교수 글의 앞뒤를 다 잘라버리고 그분 글의 한 주제 "전화위복"을 문제삼아 그를 퇴출시켰다.

한승조 교수는 노무현 정권이 친일 청산을 칼을 휘두르는 진짜 이유는 박정희 죽이기임을 지적하였다. 그런데, 유신시대의 의미를 농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지금은 TV와 냉장고 없는 농촌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유신시대가 개막하였던 1973년만 해도 한국 농촌에는 TV와 냉장고는커녕 전기 보급이 안되었었다. 당시 농촌 전기 보급율이 10%를 훨씬 밑돌았으니 한국 농촌의 밤은 깜깜 절벽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만 7년이 안되는 유신시대에 농촌 전 지역에 전기가 공급되었으며, 전두환이 대통령이 재임하였던 1980년대 중반에 농촌 가구들에 전화와 TV와 냉장고가 보급되었다.

한승조 교수는 한 시대 역사의 판단은 본래 사가의 몫이며 노무현 정권이 박정희를 친일파로 매도하여야 할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지적하였다. 군사정권이라는 말과 달리 전혀 군사정권도 아니었으며, 박정희가 친일파였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이 문제 역시 정치외교학자가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발언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박정희 죽이기를 하려는 노빠들은 한승조 교수의 "전화위복"이란 말 한마디를 가지고 물고 늘어져 그를 친일파로 매도하였다. 그러나, 만약 노빠들이 한승조 교수의 전화위복 논리에 반대한다면 이는 결국 스스로 친일 논리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만약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으로 우리 민족이 일제에서 해방된 것이 전화위복이었다는 역사 논리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노빠들은 우리 민족이 해방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우기는 논리가 되어버린다.

논리적으로 이렇게 무식한 이들이 노빠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무식한 노빠들이 한국의 저명한 정치외교학자 한승조 교수의 정치외교학 논리를 그들의 무식한 큰 소리로 누르고 퇴출시킨 것은 비상식이 상식을 뒤엎은 쿠데타였다. 그리고, 우리는 무식한 사람들의 큰 목소리가 지성인을 퇴출시키는 쿠데타를 좋은 의미의 쿠데타로서 이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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